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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선 75센트 가치담배, 한쪽선 1000달러 운동화 ‘불티’… 극심한 소비 양극화

입력 | 2014-09-18 03:00:00

[미 중산층 현장보고서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미국 뉴욕 시에서 일명 ‘가치담배’를 팔고 있는 담배 밀거래상. 사진 출처 NYT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한 사회의 정상적인 소비의 패턴은 극빈층과 상류층 사이 중산층의 소비가 정상분포 그래프처럼 불룩한 모양새를 띠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선 그 반대로, 중간을 눌러 양쪽 끝이 불룩해진 풍선 모양의 기형적 패턴을 띠고 있다. 한마디로 소비 양극화이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미국 사회 양극화는 매우 극심하게(with a vengeance)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보자. 미국 ‘중산층의 소비’ 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 업종이 있다. 세탁업과 꽃 배달업이다. 이들 업종은 중산층의 일상생활과 밀착되어 있어서 우리 교민들도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세탁업소와 꽃 배달업의 종사자가 급격하게 줄고 있고 평균 벌이도 매우 낮다고 보도했다.

먼저 세탁소를 보자. 미국 동부와 서부에서 세탁업을 하는 교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손님이 확 줄었다고 한다. 폐업하려고 가게를 내놔도 사려는 사람이 없단다. 보스턴에서 세탁업으로 큰돈을 번 지인은 가게를 20여 년 전에 산 가격의 절반에 불과한 헐값에 내놓았는데도 아직 팔지를 못하고 있다.

세탁업의 쇠퇴가 말해주는 것은 예전처럼 사람들이 다림질이 필요한 옷을 이제는 사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 하나는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할 직장이 없어졌다는 말도 된다. 세탁업의 쇠락은 미 중산층의 대량 실업과 불완전 고용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꽃 배달업 또한 미국에서는 대표적인 사양사업 중 하나다. 각종 기념일과 경조사에 꽃 배달을 통해 꽃을 전달하거나 장식하는 것은 얼마 전까지 미국 중산층들에겐 일종의 의례였다. 하지만 이제는 옛말이 됐다. 꽃집의 각종 장식과 꽃꽂이를 통해 부가가치가 포함된 가격은 이제 미국의 중산층이 소화해낼 만한 여력을 넘어섰다. 업소 이용은 거의 뚝 끊였고 꼭 필요하다면 슈퍼마켓에서 인건비가 전혀 안 들어간 꽃을 사서 직접 전달하는 방식을 택한다. 물론 비용은 몇 분의 일로 확 줄어든다. 이러니 꽃 배달업체가 온전할 턱이 있겠는가.

중산층의 백화점이라 불리던 시어스나 제이시페니 같은 곳의 경우도 문 닫는 매장이 전국적으로 속출하고 있다. 백화점은 고사하고 로스나 마셜스 같은 재할인 매장들도 파리 날리고 있다. 큰돈 들어가는 공산품은커녕 옷 구입도 머뭇거리고 있으며 단지 생활필수품만 근근이 살 형편에 놓인 것이 대부분의 미 중산층이다. 이 와중에 최저가 생필품을 파는 이른바 달러제너럴과 달러트리 같은 ‘1달러 상점’들만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싸구려 제품들이 질이 좋을 리는 만무. 일회용 포크나 스푼 등은 몇 번 음식을 집기도 전에 부러지기 일쑤고 스티로폼 접시는 쉽게 찢어진다. 과거에 이런 것들을 접해 보지 않았던 미국인들에겐 매우 생경한 경험임에 분명하다.

이에 반해 극소수 상류층 사람들 소비는 물 만난 고기와 같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자산관리업체 메시로파이낸셜의 다이앤 스웡크 수석연구관의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최고사치품의 소비는 예전으로 돌아왔다. 최상급 공산품은 수천 달러 가격표를 붙여놔도 뉴욕의 백화점에 진열되기도 전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전했다.

건축업체들도 생애 첫 구매자들을 겨냥한 중산층용 주택 건축사업을 접고 부호들의 대형 호화 주택을 공급하는 쪽으로 새 전략을 짰다. 지금 미국 시장은 극소수의 돈 많은 고객 또는 한 푼이 아쉬운 소비자층만을 겨냥해 가격을 최대한 올리든지 아니면 최대한 내리는 양극화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한쪽에선 담배 한 갑조차 사기 어려워하는 이들이 찾는 개비당 75센트(약 750원) 하는 이른바 ‘가치담배’(loosie·신조어)를 파는 밀거래상이 뉴욕의 골목을 누비고 있는 동안, 다른 쪽에선 ‘부세미’라는 1000달러(약 100만 원) 상당의 명품 운동화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뉴욕의 신경제사고연구소(INET)와 스티븐 파자리 워싱턴대 경제학과 교수 연구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소득 상위 5% 사람들이 미국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이다. 1995년에는 28%였으니 무려 10%포인트가 늘어난 것이다. 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2009∼2012년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상위 5% 소비는 17% 증가했지만 그 아래 95%의 소비는 고작 1% 상승한 것이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 증가의 90%는 소득 상위 20% 가구에 의한 것이었다.

이것은 두 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소비라는 변수를 통해 미국 중산층의 소멸을 분명히 목도할 수 있다는 것이 그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경제 정상화를 위해서는 상위 5%의 소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비누를 많이 사봤자 몇십 개에 불과하지 수만 개를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결국 중산층을 살리는 것만이 경제 회생의 관건이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점점 더 요원해지고 있다는 것이 바로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숙제다.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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