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보자’ 통해 본 연구윤리
줄기세포 스캔들을 다룬 영화 ‘제보자’에서는 내부 고발자의 제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실제로 국내외 줄기세포 스캔들은 제보에서 시작됐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 황우석 스캔들: 내부 제보자
2004년 난자 기증 논란으로 흠집이 나기 시작한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논문 조작으로 번진 건 2005년 내부 연구원 한 명의 제보에서 시작됐다. 한 방송 프로그램 게시판에 익명의 제보자가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다’는 충격적인 제보를 남긴 것이다. 제보자의 정체는 논문의 공동저자인 류영준 당시 연구원(현 강원대 교수)으로 밝혀졌다.
제보 이후 포스텍이 운영하는 온라인 사이트인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브릭)에서는 신진 생명과학 전문가들이 논문 속 이미지가 부정하게 사용됐다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의혹이 본격화됐다. 결국 제보자의 말이 사실로 밝혀지며 이 스캔들은 국내 연구윤리의 필요성을 알린 대표적 사례로 남게 됐다.
2012년 강수경 서울대 수의대 교수의 줄기세포 스캔들도 익명의 제보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황 박사 때와는 방식이 달랐다. 공개된 사이트가 아니라 해당 논문이 발표된 학술지 10종의 편집위원들에게 제보자가 직접 ‘14편의 논문에서 줄기세포 사진에 중복 게재가 있다’는 내용으로 장문의 e메일을 보낸 것이다. 이들 논문의 교신저자는 모두 강 교수였다.
이 일은 논문 표절과 철회를 감시하는 해외 웹사이트인 ‘리트랙션워치(Retraction Watch)’에 강 교수의 논문 일부가 철회됐다는 소식이 올라오면서 외부에 공개됐다. 제보자의 신원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스캔들은 황우석 사건 이후 급조됐던 국내 제보 시스템의 문제점을 다시금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만 해도 국내 대학 대부분이 실명 제보만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 오보카타 스캔들: 공개 제보자
올해 과학계 최대의 스캔들로 꼽히는 오보카타 하루코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박사팀의 유도만능줄기세포(STAP세포) 사건은 익명의 제보와 내부 고발이 동시에 이뤄졌다.
이후 전 세계 줄기세포 연구자들이 오보카타 박사의 논문에 따라 STAP세포를 재현하기 위해 수차례 시도했지만 한 건도 성공하지 못했다. 급기야 오보카타 박사의 멘토였던 사사이 요시키 이화학연구소 박사가 지난달 5일 자살하면서 STAP세포는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고 있다.
○ 신진 연구자일수록 제보 방법조차 몰라
일련의 사건을 통해 제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국내 연구자들의 의식은 쉽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가 7월 발표한 보고서 ‘2013년 국내 연구윤리 활동 실태 조사 연구’에 따르면 대학에서 타인의 연구부정행위 및 부적절행위를 목격했을 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제보한다는 응답은 5.5%에 불과했다. ‘모른 척한다’가 40.1%로 가장 많았고, ‘당사자에게 직접 얘기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다’가 22.8%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연구부정행위를 인지했을 때 제보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절반이 넘는 64.3%가 모른다고 답했다. 특히 연구경력이 짧을수록 제보 방법을 ‘모른다’는 비율이 높았다. 이 교수는 “연구부정행위 처리 절차와 이를 처리할 수 있는 기관에 대한 홍보와 교육이 신진 연구자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