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7대 총선 그해엔… 2014년 당청관계 어디로…
○ 10년 전 시작된 애증관계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당시 한나라당은 불법 대선자금 사건의 여파 속에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쓴 채 2004년 17대 총선에 임하게 된다. 당시 최병렬 대표는 돌파구 마련을 위해 ‘박근혜 공천심사위원장’이라는 회심의 카드를 꺼낸다.
하지만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이재오 의원은 “당의 얼굴로 약하다”며 강력 반발했다. 김문수 당시 대외인사영입위원장도 반대의 뜻을 밝혔다. 결국 ‘박근혜 카드’는 폐기됐고 김문수 의원이 공천심사위원장을 맡게 된다.
이후 최 대표 거취를 놓고 당은 극심한 내홍에 빠졌고 결국 총선 한 달 전인 2004년 3월 최 대표는 퇴진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열린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의원은 당 대표가 됐고, ‘천막당사’를 열었다.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50석도 어렵다던 총선에서 120석을 얻어 박근혜 대망론의 기반을 쌓았다.
이후에도 김 의원은 박근혜 대표와 사사건건 충돌한다. 2005년 행정도시특별법 원안 고수를 주장하는 박 대표에 맞서 “재논의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 의원은 박 대표의 리더십에 대해 “박정희·육영수 후광이 절대적”이라며 “리더십이랄 게 있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 곳곳에 널린 갈등의 불씨
10년이 지난 지금 박 대표는 대통령이다. 김무성 의원은 여당의 대표가 됐다. 줄곧 비주류의 길을 걸어오던 김문수 위원장은 김 대표의 호출을 받고 8년 만에 당에 복귀했다.
현재 박 대통령과 김 대표는 긴장의 당청관계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 껄끄러운 김 전 지사를 당 보수혁신위원장으로 앉힌 것을 놓고 “당청관계 파국을 불러올 수 있는 갈등의 씨앗을 뿌린 셈”이라고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김 대표와 김 위원장이 계속 손잡을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김 대표는 19일 기자들과 만나 혁신위의 권한에 대해 “무슨 일이든 전권을 맡길 순 없다. 중지를 모아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혁신위에 전권을 줘야 혁신할 수 있다”고 한 발언에 대해 선을 그은 것이다. 또 김 위원장이 지명직 최고위원을 원한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김 대표는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일축했다. 앞으로 혁신위 활동을 놓고 두 사람이 충돌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