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추석에 아버지를 추모하며 문득 고스톱을 떠올렸다. 명절이라 5남매가 모이면 우리 가족은 ‘전 국민의 명절놀이’라는 고스톱을 치곤 했다. 이젠 가족이 모여도 더이상 고스톱을 치지 않는 것으로 아버지의 부재(不在)를 실감했다.
고스톱과 관련해 한국 사회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관용어구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건설업계는 요즘 이 짜고 친 고스톱의 ‘망령’을 겪고 있다. 막대한 과징금을 받은 입찰담합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망령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게 2012년부터 올해까지 낸 과징금 규모가 업계 전체로 조 단위에 가깝고, 조사가 시작되지 않은 담합행위도 여러 건 남아 있다.
건설업계는 일단 ‘짰다’는 건 인정한다. 4대강 사업에서, 호남고속철·인천도시철도 2호선 사업 등에서 건설사들은 ‘어떤 구역은 내가, 다른 구역은 네가’ 입찰에 들어가자 약속했다. 그런데 짬짜미에 가담한 세력이 하나 더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바로 판을 벌인 정부 혹은 공공기관이라는 것이다.
공공기관이 어떤 곳인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기에 사업비를 실제 비용의 80% 선으로 낮춰 책정한다. 한마디로 짜다. 입찰제도도 최저가낙찰 방식이다. 돈 줄 곳이 짜게 쓰기로 작정한 데다 제일 적게 써낸 업체가 낙찰이 되므로 수익을 내기 대단히 힘든 구조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사업은 2009년 6월 29일 15개 공구가 동시에, 호남고속철은 같은 해 9, 11월 각각 5, 10개 공구가 동시에 발주됐다. 임기 내에 공사를 끝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정부가 대형 물량을 한꺼번에 쏟아낼 때, 그것도 몇 안 되는 대형 건설사들을 대상으로 할 때 이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다. 실제 이들은 모든 구간에 비싼 설계비를 들이는 대신 ‘공구 나누기’를 했다. 과징금사태와 관련해 정부 책임이 적지 않다는 업계의 주장에 나름 설득력이 있는 이유다.
이들의 행위가 공정거래 질서를 해친 건 틀림없다. 그럼 피해자는 누구일까. 중소건설사가 후보일 텐데 이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20위권 밖 중소 건설사의 관계자는 “건설업 특성상 이런 식의 ‘나누기’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 “우린 대형사가 주관하는 컨소시엄에 들어가 같이 공사하는 게 낫다”고 했다. 이런 현실을 알고 사실상 용인한 공공기관 역시 피해자로 보긴 어렵다.
공공공사 입찰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정부는 곧 종합심사제를 도입한다. 좋은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굴러가게 하기 위해 앞으로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보다 급한 건 시장을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임숙 경제부 차장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