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신미나(1978∼ )
아버지는 고드름 칼이었다
찌르기도 전에 너무 쉽게 부러졌다
나는 날아다니는 꿈을 자주 꿨다
머리를 감고 논길로 나가면
볏짚 탄내가 났다
흙 속에 검은 비닐 조각이 묻혀 있었다
동생은 눈밭에 노란 오줌 구멍을 내고
젖은 발로 잠들었다
뒤꿈치가 홍시처럼 붉었다
자꾸만 잇몸에서 피가 났고
두 손을 모아 입 냄새를 맡곤 했다
왜 엄마는 화장을 하지 않고
도시로 간 언니들은 오지 않을까
가끔 뺨을 맞기도 했지만 울지 않았다
몸속 어딘가 실핏줄이 당겨지면
뒤꿈치가 조금 들릴 것도 같았다
시인은 ‘몸속 어딘가 실핏줄이 당겨지면/뒤꿈치가 조금 들릴 것만’ 같은 나이, 사춘기가 막 시작되려는 시기의 기억을 불러낸다. 춥고 쓸쓸한 겨울의 기억. ‘아버지는 고드름 칼이었다.’ 늘 화가 나 있는 무서운 아버지. 제 고된 삶이나 세상에 대해 화가 난 거지만 만만한 게 가족이라 집안에서는 화를 참지 않고 벌컥 터뜨리곤 했을 테다. 큰 딸들은 대처에 나가 있으니 남은 딸 중 큰 애인 시인의 뺨을 때리기도 했나 보다. ‘자꾸만 잇몸에서 피가’ 났다니 잘 먹지 못해 혈색도 좋지 않았을 여자아이….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