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건·스포츠부 차장
대만의 주요 일간지인 롄허보는 20일 “성대한 체육 행사는 한류 콘서트가 됐다. 사상 최악의 개막식”이라고 보도했다. 스포츠와 관련이 없는 이영애가 점화자인 것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일본의 언론들도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번 개회식은 그야말로 ‘연예인들의 잔치’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의 상징이었던 굴렁쇠가 등장할 때는 장동건이 나섰고, 대형 선박이 나올 때는 김수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개최국 한국의 대형 태극기가 입장할 때는 현빈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국민 타자’ 이승엽, 여자농구 스타 박찬숙, 한국 테니스의 전설 이형택 등 스포츠 스타들이 성화 중간 주자로 나섰지만 그들은 조연에 불과했다. 이형택은 성화를 들고 관중석에 올라가 이영애가 나올 때까지 하릴없이 3분여를 기다려야 했다.
물론 이영애가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그를 점화자로 선정한 조직위의 안목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선수들이 흘린 땀과 눈물의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환희의 순간을 선수들을 통해 접할 수 있어서다.
이전에 열린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선수 출신이 성화를 점화한 것은 그 나라에 내세울 만한 연예인이 없어서였을까. 개막식을 연출한 임권택 감독은 식후 기자회견에서 “적은 예산으로 차별화시킬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인천 아시아경기는 이전 대회들과 확실히 차별화된 대회로 남을 것이다. 스포츠 대회에 스포츠 스타들이 들러리가 된 첫 아시아경기로….
이승건·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