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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 떠밀려온 집창촌… 쉽게 돈 벌러 찾아드는 룸살롱

입력 | 2014-09-22 03:00:00

[프리미엄 리포트/성매매특별법 10년, 신-변종 판친다]
3가지 업태별 성매매 여성 실상 알아보니…




“벗어나고 싶어요” 성매매 여성 자화상 부산 지역 사창가에서 일했던 성매매 여성이 그린 그림(왼쪽 사진)에는 양의 얼굴을 한 여성이 벌거벗은 채 팔다리가 끈에 매달려 있다. 코앞 상자에 담긴 가위는 끊고 싶어도 끊지 못하는 성매매의 사슬을 부각시킨다. 이 그림은 1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성매매특별법 10주년 기념 전시회에서 ‘벌거숭이-슬픈 단막극’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됐다. 성매매특별법 10년이 지났지만 안마방(오른쪽 위 사진), 풀살롱(오른쪽 아래 사진) 등 각종 성매매는 여전하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동아일보DB

▼ 집창촌 ▼

특별법 시행후 수입 3분의 1 토막… ‘진상’ 손님만 늘어 툭하면 요금 시비
경찰도 강압적 “미아리만 얕봐”


17일 오후 8시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 ‘미아리 텍사스’.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김가영 씨(가명·36)와 윤민진 씨(가명·34)를 만났다. 둘은 모두 20세 전후에 성매매를 시작해 티켓다방, 보도, 룸살롱을 거친 뒤 미아리로 왔다. 체감 수입은 특별법 전후로 차이가 뚜렷했다. 10년 전 손님 한 명당 5만 원을 받았지만 지금은 8만 원을 받는다. 화대는 비싸졌지만 하루 10명도 받던 예전에 비해 요즘은 3명이면 많이 받은 날이 됐다. 물가 등을 감안하면 수입은 3분의 1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손님의 ‘질’도 나빠졌다. 특별법 이후 중산층 회사원 손님은 ‘단속 관리’가 잘돼 있는 강남권 업소만 찾는다. 경찰 신고를 약점 잡는 ‘진상’ 손님만 늘었다. 김 씨는 “10년 전에는 성매매 여성들도 맞거나 돈을 도로 빼앗기면 ‘경찰서 가자’고 할 수 있었고, 경찰서에서도 최소한 일반인 취급은 해줬다”고 말했다. “요즘은 손님이 자기 팔 자기가 긋고 ‘여자가 그랬다’고 난동을 부리면서도 오히려 ‘신고할까? 경찰서 갈까?’라며 협박한다. 억울해도 벌금 생각하면 병원비까지 물어줄 수밖에 없다”고 김 씨는 말했다. 특별법 직후 미아리는 쑥대밭이 됐다. 수년 동안 경찰서로 일주일에 한 번씩 갔다고 했다. 단속도 있지만 대개는 손님과 시비 끝에 신고당하는 경우다. 최소 1000만 원인 벌금이 업주에게 부과되고 나면 더더욱 손님 앞에 약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강남권 변종 업소들과 비교할 때면 상대적 박탈감이 컸다. 윤 씨는 “모두가 미아리만 얕보는 거야”라고 말했다. “여기서 진상 부리는 손님들도, 강남 룸살롱 가면 돈 많은 척하느라고 그렇게 안 한다고. 경찰도 마찬가지야, 여기서 우리 대하듯 그쪽 아가씨들을 대하진 않지”라며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전통적인 사창가에 남은 여성들은 업주와의 계약 관계나 개인적인 부채, 딸린 식구들의 생계에 갇혀 전업은 꿈도 꾸지 못한다. 나이는 30대를 넘었고 ‘업계’ 종사 기간이 길었다.

김 씨와 윤 씨 모두 지방 출신에 가난한 삶에 떠밀려 초창기 티켓다방이나 노래방부터 시작했다. 김 씨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다면, 가난하지 않았다면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제 와서 월 40만 원 받으면서 미용 기술을 배우라고 해도 여기 누가 그 돈 받고 지금 살아갈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둘은 모두 고향에 있는 노부모에게 병원비와 생활비를 부치고 있었다.

▼ 안마방 ▼

빵집 음식점보다 수입 2배 넘지만 낮-밤 뒤바뀌고 정상 생활 힘들어
쇼핑-성형에 중독… 돈도 거의 못 모아


박아정(가명·28) 씨는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평범한 삶을 살았다.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부푼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온 박 씨는 20대 초반부터 음식점과 제과점 등지에서 일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서울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성탄절 등 빵 수요가 많은 때는 하루 15시간 정도 서서 일하기도 했다. 급기야 하지정맥류에 시달렸고 다리가 아파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도 많았다.

또 일하던 곳이 망해 문을 닫기도 했고 가게 사정이 어렵다고 주인이 임금을 체불하는 경우도 많았다. 월 200만 원이 되지 않았던 월급은 월세와 생활비로 대부분 지출해 돈을 모으기도 어려웠다. 박 씨는 “일이 없었던 기간에는 모아둔 돈이 거의 없어 월세를 못 내 이곳저곳 방을 옮겨 다니기도 했고 친구 집에 얹혀살기도 했다”고 말했다. 돈이 궁했지만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게는 돈을 부쳐 달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박 씨가 처음 안마방에서 일하게 된 것은 2012년 말부터다. 일하던 곳이 갑자기 망하는 바람에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쫓겨난 그에게 당시 월세방에서 같이 살던 동향 출신 룸메이트는 빵집이나 음식점보다 일하기도 수월하고 돈도 훨씬 많이 벌 수 있는 곳을 소개해줬다. 그곳이 바로 안마방이었다. 그때부터 이 업소에서 일하게 된 박 씨는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지금까지 2년 가까이 해왔다. 매일 오후 7시부터 오전 4, 5시까지 일한 뒤 오후 2시 정도에 일어나는 생활이 반복됐다. 밤에 깨어 있고 낮에 자는 생활이 반복되자 건강이 악화됐고 인간관계도 단절됐다. 특별한 취미가 없다는 박 씨는 “낮에는 혼자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본다”고 밝혔다. 그는 “예전에 일할 때보다 2배 이상 더 돈을 벌지만 그만큼 쇼핑과 성형 수술 등에 많이 써버려 돈을 거의 모으진 못했다”고 털어놨다.

 ▼ 룸살롱 ▼

경찰단속 비웃듯 곳곳서 영업 성행
강남권 업소 여성 月1000만원 수입… 생계형 드물고 신종 된장녀 몰려


서울 강남구 논현동 호화 H주점에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영업 상무’로 일했다는 홍문기(가명·28·남) 씨는 “일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경찰 단속을 당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영업 상무는 유흥주점에서 ‘룸’을 관리하고 손님 접대를 담당하는 일종의 ‘영업직’이다. 월 매출 10억여 원이 넘는 H주점은 15층짜리 빌딩 꼭대기 4개 층을 썼지만 간판은 달고 있지 않았다. 유명 연예인, 정치인, 기업인 등 ‘A급 손님’이 많이 오는 고급 술집이었다. 홍 씨는 “일하는 동안 돈이 무서워졌다”고 했다. 강남 룸살롱과 풀살롱, 가라오케는 언제나 호황이었다. H주점은 한 테이블에 음료와 안주를 내오는 ‘기본’ 가격이 56만 원이었다. 술값은 별도였다. 홍 씨는 자신이 맡은 테이블의 술값 중 30% 정도만 떼어 받아도 월수입이 5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성매매는 업장 물밑에서 이뤄졌다. ‘보도방’ 업주들은 자신의 ‘박스’(일종의 성매매 여성 그룹)를 데리고 대기하고 있다가 유흥업소에서 연락을 하면 찾아가 짝을 지어줬다. 인근 모텔이나 호텔로 나가는 ‘2차’를 경찰이 단속하기는 어려웠다. 홍 씨는 “풀살롱도 손님이 수틀려서 신고하는 경우 말고는 미아리처럼 정기 단속을 하는 경우는 거의 못 봤다”고 말했다.

H주점엔 상근 여종업원 6명이 있었고 ‘2차’를 담당하는 보도 여성들이 그때그때 수요에 맞춰 출입했다. 상근 여종업원 6명 중 4명이 대학생이었고 그중 1명은 명문 여대를 다녔다. 강남 최고급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외모뿐만 아니라 상류층 손님들과 대화가 통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의 학력도 갖춘 경우가 보통이었다. ‘2차’를 나가는 여성들은 화대의 10%를 포주에게 떼어줘도 월수입이 700만∼1000만 원이 된다고 했다. 이러다 보니 미아리 여성들과 달리 빚이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성매매를 하는 사례는 드물었다.

홍 씨는 “한 번은 아버지가 교수인 여대생이 룸에서 아버지 친구를 만나 혼쭐이 난 일도 있었다. 이 여대생이 ‘한 달에 용돈이 150만 원인데, 네일아트 한 번 받는 데 60만 원이 든다’고 하더라”며 “룸살롱 텐프로 등 강남권 최고급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쉽게 돈을 벌고 또 ‘그들만의 리그’에서 치장에 큰돈을 쓰게 되는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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