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코리아 프로젝트 2년차/준비해야 하나 된다]통합교육 현장을 가다 <上>독일의 ‘공감과 나눔’ 모범사례
동서포럼의 생애 나눔 프로그램은 동·서독 출신뿐 아니라 터키 이민자와 독일인 간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며 독일 내 사회적 통합에 기여하고 있다(왼쪽 사진). 유년시절에 베를린장벽 붕괴를 경험하고 통일 독일에서 지낸 동독 출신 통일 1세대의 모임인 ‘제3세대’ 멤버들이 지난해 11월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오른쪽 사진 오른쪽)과 베를린 대통령궁에서 면담하고 있다. 동서포럼·요하네스 슈테믈러 씨 제공
슈타지 요원 출신 남성은 저녁 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더 깊은 얘기를 했다. 나치 정권에 반발하던 어머니를 죽인 친(親)나치 정권 인사들이 서독으로 건너가 승승장구하는 것을 목격한 뒤 복수심에 불타서 슈타지 요원이 됐다고 눈물로 고백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다양한 배경의 참가자들은 그를 위로하며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1990년대 초반에 시작한 이 프로그램에는 그동안 동·서독인 2000여 명이 거쳐 갔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자는 취지에서 참가 인원은 동·서독 출신 각각 5명씩 총 10명으로 제한했다. 연령, 학력 등 별도의 자격 조건은 없지만 금요일 저녁에 출발해 일요일 오후에 귀환할 때까지 나눈 이야기나 상대방의 신원 등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밀 준수 원칙도 진정한 나눔의 바탕이 됐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슈미트괴델리츠 이사장은 1998년 동·서독 출신 주민들의 화합과 대화 모임 운동을 주도하는 동서포럼을 설립했다.
슈미트괴델리츠 이사장은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나왔다고 흑백 갈등이 없어진 것이 아니듯 동독 출신 총리가 나왔다고 동독인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머릿속 장벽은 여전하다. 동독인의 70%는 자신들이 2등 시민이라고 느낀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통일은 지난한 작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슈미트괴델리츠 이사장은 “이제는 동·서독 사람들뿐 아니라 터키 러시아 이민자와 독일인 간의 생애 나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며 “최근 한국에서도 탈북자와 남한 사람 간의 첫 생애 나눔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프로그램을 초창기부터 베를린 인근뿐 아니라 독일 전역에서 운영하지 않은 것이 큰 실수였다”며 “한국은 통일을 이룬 뒤 한반도 전체로 이런 프로그램을 확산시켜 보다 포괄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공감으로 정체성 회복한 제3세대
동·서독 간 ‘나눔’을 통해 장벽을 극복하는 프로그램 외에도 동독 출신들 내부에서의 자체적인 노력도 여전히 활발하다.
유년 시절 베를린 장벽 붕괴를 경험한 1975∼1985년생인 ‘제3세대’가 바로 그 주인공.
1930년 이전 태어난 동독 창건세대가 1세대, 1950∼1970년생들이 2세대임을 감안해 붙인 이름이다. 이들처럼 동독과 통일 후 교육 시스템을 모두 경험한 동독 출신자들은 현재 약 24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스스로를 ‘잊혀진 목소리’라고 칭해 왔다. 유년 시절 급작스럽게 이뤄진 통일로 이전까지의 동독 교육과 문화는 갑자기 사라졌다. ‘제3세대’인 슈테파니 마이발트 씨는 “옛 동독 것은 모두 틀리고 서독식은 모두 정답이라는 분위기가 무겁게 우리를 억누르곤 했다”고 당시의 문화적 충격을 회상했다.
또 옛 동독 지역을 돌아보는 ‘제3세대 버스투어’, 또래 서독 출신들과 함께하는 토론 모임 등도 진행하고 있다.
베를린=김정안 기자 j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