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논설위원
나는 2년 전 국회선진화법 통과 직후 헌법학자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김철수 명지대 석좌교수와 정종섭 서울대 교수에게 전화한 적이 있다. 김 교수는 이 법을 마뜩지 않아 하는 게 확연히 느껴졌으나 “제자가 주도한 법”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정 교수는 그 문제라면 대답하기 곤란하니 끊었으면 좋겠다는 기색이 말은 안 해도 역력히 전해졌다.
그러고 나서 보니 김 교수는 국회선진화법 통과를 주도한 황우여 교육부 장관, 즉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서울대 법대 은사이면서 그의 박사학위 논문까지 지도했다. 정 교수는 황 원내대표의 서울대 법대 후배가 되면서 그 얼마 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황 원내대표 체제에서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김 교수는 올 들어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나서야 “자문위에서 국회선진화법이 헌법이나 다수결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고 말했다. 우회적이지만 본인의 생각도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는 사실상 침묵했다. 그가 신문에 누구 못지않게 많은 기고를 한 사람이었기에 그 침묵은 기이했다. 그런 그가 지난주 세월호 특별법을 두고 국회가 마비된 상황에서 안전행정부 장관으로서 논평을 부탁받고 입을 열었다.
내가 놀란 것은 그가 느닷없이 국회 해산을 끌어들여서가 아니다. 총명했던 헌법학자가 궤변을 늘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합의제가 예외적으로 다수결제를 보완하는 경우는 있지만 원칙은 다수결이다. 게다가 내각제야말로 다수결에 기반한다. 내각제에서 제1당은 독자적으로든, 연정을 통하든 과반을 확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내각제에서의 국회 해산은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서이지 합의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가 헌법이론적으로 긍정 운운한 합의적 민주주의가 실제 어떻게 반(反)민주적으로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데 19대 국회보다 더 좋은 실례는 없다. 야당이 과반의 지지도 얻지 못하는 법을 ‘법안 연계 처리’라는 방식으로 통과시키는 것을 보라. 이것은 다수의 지배가 아니라 소수의 지배다. 이렇게 처리된 법안까지 합산해서 ‘식물국회가 동물국회보다 낫다’고 말하는 한심한 언론인도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되돌아올 다리를 불살라버린 법이다. 이 법의 통과는 과반으로 이뤄졌으나 되돌리려면 5분의 3의 동의가 필요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어떤 정당도 5분의 3의 의석을 가져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법은 이론적으로는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것이 이 법의 진짜 고약한 점이다. 차라리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한 위헌이면 낫겠다. 그러면 헌법재판소에 제소해서 무효화하는 길이라도 있지 않은가.
국회선진화법으로 국회 마비는 만성이 되고 국회가 국가위기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할지도 확신할 수 없게 돼버렸다. 정 교수는 박근혜-황우여 조(組)의 근접거리에 있던 인연으로 장관까지 됐다. 그가 메피스토펠레스처럼 그들의 귀에 대고 국회선진화법은 문제없으니 통과시키라고 속삭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그 법을 제지하지도 않고 또 비판하지도 않음으로써 헌법학자가 꼭 필요할 때 제대로 경고음을 울리지 못한것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