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무늬나비 떼
―김은경(1976∼ )
밤 빨래를 넌다
마당에서 백년을 산 플라타너스
검은 얼굴을 하고
바스락 바스락
수국 지는 소리
거기 희미한 그림자는 또 발에 차인 흐느낌
몸을 덮던 옷가지들
발가락엔 힘이 없고
목덜미에서 끊임없이 물방울이 떨어진다
일주일 치 삶이
견딘 중력의 힘은 투명하다
치명의 중심부로 가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몸부림을 쳤나
땀내 나는 시간이
이렇게 구김으로 남더라고
빨랫줄을 잡아당긴
모과나무는 향기롭다
지퍼도 단추도 잠그지 않은
빨래들이 펄럭인다
묵은 그대,
손금이 닳아갈수록
바싹바싹 새로워지는 것들,
지금은 속까지 다 비치는 날개들
한 줄에 매달려 펄럭인다
얼룩이 곧 이름이 된
얼룩무늬나비처럼
‘백년을 산 플라타너스’가 있고 수국이 만발한 마당에서 모과나무 사이에 맨 빨랫줄에 빨래를 널다니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 삶터의 정취를 만끽할 정서도 거의 바닥난 화자다. 나비같이 옷을 떨쳐입고 ‘치명의 중심부로 가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던, 집 밖에서의 ‘땀내 나는 시간’에 화자의 마음은 구김이 갔다.
그래도 손금이 닳도록 바락바락 빨아 넌 옷들, 날개들이 알록달록 ‘한 줄에 매달려’ 펄럭이는 걸 보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을 테다. 지퍼와 단추로 여미고 긴장하던 ‘일주일 치 삶’의 묵은 때를 빨아 헹궈서 ‘새로워지는 것들’로 오는 한 주를 맞을 채비를 하는 빨래 너는 시간.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