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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조진서]정몽구를 위한 변명

입력 | 2014-09-24 03:00:00


조진서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현대자동차의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한국전력 부지 매입이 연일 화제다. 10조5500억 원이라는 입찰금액은 일반인의 인지 범위를 초월했다. “정부 땅 사는 것이라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는 정몽구 회장의 발언도 드라마틱했다. 한 후배 기자는 ‘삼성’역을 ‘현대’역 혹은 ‘몽구’역으로 개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했다.

정 회장의 표현과 달리 증권계의 반응은 무겁다. 경쟁자 삼성전자가 써낸 것으로 알려진 4조 원대 후반의 두 배가 훨씬 넘는 금액을 불러서 ‘승자의 저주’를 받게 됐고 결국 주주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는 코멘트들이 국내외 증권사, 투자사로부터 나왔다. 인수가 결정된 날 현대차의 주가는 9% 넘게 떨어졌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도 “회사의 의사결정에서 주주의 이익은 철저히 무시됐다”라고 비판했다.

비판은 자유다. 그런데 논리에 맞지 않는 부분들이 눈에 띈다.

우선 ‘승자의 저주’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이는 경제학 용어로, 누구에게나 같은 가치가 있는 자산을 경매하는 ‘공통가치 경매’에 적용된다. 유전, 광산이 대표적인 예다. 공통가치 경매에서 이기려면 다른 참가자들의 평균 입찰액, 즉 객관적 기대가치보다 높은 가격을 불러야 하고 결과적으로 승자는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반면 상업용 부동산이나 예술품 등은 주관적 가치를 가진 자산이다. 같은 땅이라도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값어치가 다르다. 가장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자가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내는 것이 당연하다. 이 땅을 삼성전자보다 현대차그룹이 더 유용하게 쓸 수 있기 때문에 더 높은 값을 불렀다면 이를 승자의 저주라고 볼 순 없다.

둘째, 소문처럼 경쟁사보다 턱없이 많은 금액을 썼다 해도 그것이 꼭 경영자의 잘못은 아니다. 만일 경쟁사의 의향을 정확히 알아내고 입찰에 들어갔더라면 그것이야말로 법적으로 문제가 됐을 것이다. 참가자들이 서로의 입찰액을 몰랐던 건 담합 없이 경매가 제대로 진행됐음을 보여줄 뿐이다.

셋째, 주주에게 피해를 줬다는 비판도 일부만 맞다. 빨리 치고 빠지는 단기 투자자와 높은 배당을 원하는 해외 투자자들에게는 이번 매입이 충격이었겠지만, 수년 이상 주식을 보유하는 장기 투자자들은 이번 일 하나 때문에 정 회장을 비난하진 않을 것이다. 현대차 주가는 6년 전 금융위기 때에 비해 5배 이상 높다. 자동차업계를 오래 담당하고 있는 한 애널리스트는 필자에게 “장기 투자용으로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보다 고배당을 원하는 투자자가 이번 일에 실망했다면, 주식을 팔고 떠나면 그만이다”라고 말했다.

10조여 원이라는 금액이 적절했는지 아닌지는 앞으로 현대차가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가치를 이뤄낼 것이냐에 달렸다. 지루하고 밋밋한 고층 건물만 들어서는 ‘현대 타운’ 건설에 그치고 만다면 물론 실망스럽겠지만, 땅도 파기 전부터 경영진의 책임을 묻자는 주장은 많이 앞서간 것 같다.

조진서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cj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