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에서 농사를 짓는 이모 씨(53·여)는 2007년 6월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만난 김모 씨(64)로부터 '검은 유혹'을 받았다. 남편 없이 혼자 자녀를 키워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이던 이 씨는 그의 제안에 귀가 솔깃했다. 이 씨는 농사짓던 땅까지 팔아가며 김 씨에게 4400만원을 건넸다. 김 씨는 거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차일피일 미뤘다. 결국 이 씨가 꿈꿨던 일확천금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8월 말 김 씨를 사기 혐의로 검거했다.
'전직 대통령 비자금'에 투자하면 거액을 주겠다며 피해자를 현혹하는 사기범들이 최근 연이어 검거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 같은 사기 피해사례가 올 들어서만 15차례 발생했다. 피해자들이 외부에서 보기에 뻔한 사기 수법에 속는 가장 큰 것은 일확천금의 유혹 때문이다. 사기범들이 대통령 비자금을 운운하면서 투자금의 10배 이상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는 통에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돈을 주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
허경미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기꾼의 말이 허황된 걸 알면서도 한탕을 하려는 심리가 있어 돈을 건네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 퍼진 배금주의가 연이어 벌어지는 비자금 사칭 사건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대통령도 아닌 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비자금 수십억 원이 담긴 가방이 언론 등에 계속 보도된 바 있다"며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엄청난 액수의 검은 돈이 실제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