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점자기본법 10월 국회 통과 예정
점자를 해독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의 비율은 5.2%, 점자를 배우고 있는 비율은 0.9%에 불과하다. 점자를 공식 문자로 인정해 보급을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점자기본법에 거는 시각장애인들의 기대가 크다. 동아일보DB
“국어의 보조수단이 아니라 청각장애인의 모국어입니다. 바꾸는 것이 맞습니다.”
지난해부터 청각장애인 사이에는 수화(手話)란 용어를 ‘수어(手語)’로 바꾸려는 것에 대해 찬반 의견이 팽팽히 엇갈렸다. 정부와 장애인단체는 오랜 의견 수렴 끝에 ‘수어’로 바꾸기로 했다. 이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한 ‘한국수어법’이 현재 국회에 상정돼 다음 달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왜 ‘수화’를 ‘수어’로 바꾸는 것일까?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그간 수화를 음성언어인 한국어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여겨왔다. 한국어를 손, 몸으로 표현하는 동작 정도로 본 셈. 하지만 국립국어원의 장기간에 걸친 연구 결과 수화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처럼 한국어와 전혀 다른 문법체계를 가진 별도의 언어로 판명됐다.
우선 수화는 한국어와 외국어가 다르듯 해외 수화와 표기법이 다르다. 예를 들면 사과(국어)가 영어로는 애플(apple), 일본어로는 린고(リンゴ)로 쓰이듯 국내 청각장애인은 사과를 오른손 주먹을 쥐고 집게손가락을 펴서 입술 밑으로 스치는 형태로 표현한 반면 미국 수화는 오른손 주먹을 쥐고 집게손가락을 구부려 오른 뺨에 대는 동작으로 나타낸다(그림 참조).
또 수화는 한국어 문장 그대로를 손동작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한국어는 ‘철수가 밥을 먹다’라고 표현하지만 수화는 ‘철수 먹다 밥’의 어순을 갖고 있다. 또 수화는 조사, 어미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립국어원 김아영 학예연구사는 “수화가 하나의 독립된 언어라는 점에서 ‘수어’란 표현이 적합하다”며 “청각장애인들에겐 수화가 모어(母語·제1언어)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외국어처럼 느껴 언어활동, 나아가 사회활동에 어려움이 크다”고 설명했다.
수화를 ‘수어’로 바꾸는 건 별도의 고유 언어이자 국내 공용어로 인정해 약 30만 명에 달하는 국내 청각장애인의 언어기본권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실제 뉴질랜드, 덴마크,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수화를 하나의 언어로 인정하고 있다. 15∼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도 장애인 권익 증진을 위해 수화를 수어로 바꾸려는 한국 정책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한국농아인협회 이미혜 사무처장은 “장애인의 언어적 권리를 보호하는 독립된 법안이 없었기 때문에 기대가 크다”며 “수화가 언어로 인정되면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 시설 등 제반 환경이 장애인 권익 향상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화가 수어로 되면 정밀한 수어 실태조사가 이뤄지고 수어 교육, 수어교재 제작 및 보급이 체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수어연구소, 수어통역센터도 설치되고 국가 행사는 물론이고 극장 박물관에서도 수어 해설이 보강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립국어원은 신조어, 전문용어를 표현할 수어 개발을 위해 내년 8억 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한편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를 공식문자로 인정하고 점자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점자기본법안’도 이번 정기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