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추정되는 분의 초대로 서울 근교에 있는 그분의 전원주택에 놀러 갔다. 집이 참 알맞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빈약하지도 않은 편안한 집에서 잘 먹고 주변 풍경도 잘 감상하고 돌아오는 길, 옆에서 운전하는 남편이 굳이 안 해도 지장 없는 말을 건넨다.
“세컨드와 세컨드 하우스는 소유하는 순간부터 골치 아프대. 집을 관리하는 게 보통일이 아니라잖아. 마당의 풀 뽑아야지, 밭에 심은 작물 손봐야지….”
“골치 아픈지 안 아픈지는 해봐야 알지.”
물론 해보지 않아도 안다. 그러나 너무 쉽게 동의하고 싶지 않아서 짐짓 창밖을 내다보며 긴장감을 높였다.
전에 다니던 직장의 상사가 사과 과수원을 장만한 뒤로 제대로 된 사과를 먹어 보지 못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낙과를 처분하기 바빠서 잘생긴 사과를 먹어 볼 새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 과수원을 시작할 때는 주말에 가족과 함께 소풍 가듯이 놀러 가서 슬슬 힘닿는 데까지 일할 작정이었다. 가족과 주말에 과수원에 가는 상상이 제법 달콤했는데, 웬걸 서너 번 따라나서던 아이들이 차츰 핑계를 대며 꽁무니를 뺐다. 하긴 매주 과수원에 가서 부모와 시간을 보내려고 할 자녀가 어디 있을까. 할 수 없이 부부만 드나들게 되었다. 게다가 눈앞에 보이는 일거리를 외면할 수 없어 점차 강도 높게 일에 매달리게 되니 쉬어야 하는 주말이 오히려 노동하는 주말로 변했다며 한숨쉬었다.
얼마 전 모임에서 어떤 분이 나에게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요”라는 농담을 하기에 “어떻게 알았어요?”라고 정색을 하니까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살짝 뜸을 들인 후 덧붙였다. “실은 아버님이 독립유공자시거든요.”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