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 논설위원
노무현 정권 5년은 급진좌파 세력의 전성시대였다. 청와대를 비롯한 권부(權府) 핵심에 대거 입성한 운동권 출신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당시 청와대 파견근무를 했던 전직 경제 관료는 “정책을 다뤄본 경험은 물론이고 나이로도 비교가 안 됐지만 걸핏하면 운동권 경력을 과시하며 ‘관료의 수구 꼴통 발상’을 운운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2007년과 2012년 대선에서 우파가 승리하면서 시대착오적 미망에 빠진 세력의 중앙정부 진출은 제동이 걸렸지만 좌파운동 경력이 고속출세의 지름길인 것은 마찬가지다. 중앙권력 대신 이들의 진출이 두드러진 분야는 야당과 지방 권력, 교육 권력이었다.
참여연대 리더였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체제 출범 후 서울시와 시교육청, 산하 기관의 요직에 운동권 출신이 대거 낙하산을 타고 내려갔다는 말이 나온다. 지방 권력과 교육 권력이 주무르는 막대한 예산을 무기로 거대한 ‘이권의 사슬’이 구축되는 징후도 보인다. 머리 회전이 빠르다면 굳이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조기 신분 상승과 돈벌이를 위해 좌파운동에 뛰어들 만도 하겠다.
반면 한국에서 우파운동은 가시밭길의 연속이다. 명색이 보수우파 정권이 7년 가까이 집권하고 있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급진, 친북 세력의 득세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는 신념을 지닌 자유주의 우파운동가들이 벼락 출세와 짭짤한 수입이 종종 따르는 좌파운동가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분투하는 현실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힘깨나 쓴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을 살펴보라.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를 위해 고민하기보다는 기회주의가 몸에 밴 ‘뺀질이’들이 더 많다. 15년 넘게 좌파운동이 누려온 단물과 특혜는 당연시하는 세력이 ‘가뭄에 콩 나듯’ 발탁되는 우파운동가들에게 극우니 친일(親日)이니 하는 낙인을 찍으며 매도해도 제대로 받아치지도 못하고 쩔쩔매곤 했다. 권력이 저러니 산하 기관도 비슷하다. 금융감독원이 구성한 2기 금융감독자문위원회의 시민사회단체 위원 2명은 모두 범(汎)좌파단체 출신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자유경제원, 시대정신 같은 온건우파단체 인사조차 한 명도 없다.
막말과 욕설, 독선이 몸에 밴 급진 운동권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것이 현 야당의 한계라고 한다. 반대로 뚜렷한 이념도 철학도 없고, 국가 정체성을 지키는 데 기여한 역할도 적은 웰빙 여당 정치인들의 몫이 너무 큰 것이 한국 우파의 비극이다. 야당은 좌파운동권, 특히 급진-친북 운동권의 지분을 줄이고 여당은 우파운동권의 지분을 늘려나가 일정 수준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출셋길 좌파운동, 가시밭길 우파운동’의 뒤틀린 현실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둘 다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