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와 함께 하는 대한민국 헌법 이야기]11조 1항
남성에게만 병역의 의무를 지우는 것은 평등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사진은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모습. 동아일보DB
손상식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원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규정한다. 평등이라는 관념은 헌법이 존재하기 전인 아주 먼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동물과 달리 이성과 도덕에 기초하여 인식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개개인이 모두 하나의 인격체로서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에 관계없이 어떤 사람은 귀족으로, 어떤 사람은 노예로 태어나서 그러한 차별적인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았다. 그러던 것이 중세에 이르러 기독교의 영향으로 모든 사람은 ‘신 앞에 평등’하다는 사상이 등장했다. 헌법의 ‘법 앞에 평등’도 사상적으로는 여기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신이라는 절대자 앞에서 모든 사람이 같다는 의미로, 법 앞에 평등도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같은 대우를 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각자가 처해 있는 구체적인 상황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평가하여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에는 같게,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에는 다르게 평가하고 대우할 것을 요청한다.
병역법은 남녀라는 성별을 기준으로 차별적인 병역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차별대우가 있다고 해서 바로 평등권이 침해되는 것은 아니다. 평등권이 침해되는 경우는 그러한 차별에 정당성을 찾을 수 없을 때이다.
일반적으로 여성보다는 남성이 전투에 더욱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여성은 임신 출산 등 생리적 특성과 출산 후 일정 기간의 수유 및 양육의 부담으로 인해 전투의 수행이나 군사훈련이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 이유에서 헌법재판소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특성의 차이에 기초하여 최적의 전투력 확보를 위해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한 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차별의 문제는 그 나라의 역사와 사회구조를 반영한다. 미국에서는 특히 인종에 근거한 차별이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어 왔다. 한때 백인용과 흑인용의 열차객실을 따로 만들도록 하는 조치가 문제되었다. 이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1896년 플레시 판결에서 ‘분리하되 평등(separate but equal) 원칙’을 통해 시설이나 서비스가 같기 때문에 평등권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원칙은 1954년 브라운 판결에 의해 폐기되었다. 연방대법원은 아무리 같은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백인과 흑인을 분리하는 것 자체가 인종을 차별한다고 보았다. 이를 계기로 극장이나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의 인종분리 정책이 사라지게 되었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한 독일의 경우에는 여성의 건강보호와 양육부담을 고려한, 여성 근로자의 야간근로시간을 제한하는 법률이 문제되었다. 이에 대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근로시간 제한의 목적이 남성과 여성에 대한 전통적 정형적인 성적 역할 분담에 근거한 것이라는 이유로 정당한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손상식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