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규 대중음악평론가 강동대 실용음악과 교수
아들이 발달장애 자폐 1급 판정을 받은 지 10년이 지났다. 나는 매일 아침 아들과 등교한다. 9년 동안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를 향했다. 장애 판정을 받는 순간 세상은 말없이 무너져 내렸다. 순간 냉철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을 굳건하게 다잡았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아들을 껴안고 맹세했다. ‘내가 너를 지켜주겠노라’고. 아들의 장애를 죽는 날까지 온전히 인정하기로 했다.
그 후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들의 장애를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들과 동행할 때는 주변 사람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 설명했다. 이웃의 불편을 감안해 1층에서만 살았던 우리 가족은 고층으로 이사를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들은 이제 아들의 장애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 들어온 아들이 박수를 치면서 혼잣말을 할 때 이웃들은 적잖이 놀랐다. 나는 이웃들에게 ‘45층에 사는 준우’를 차근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웃들 역시 이런 경험이 없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이웃들에게 당당히 설명하지 않았다면 소통의 벽은 점점 높아져 갔을 것이다. 이웃들은 내 설명이 있고서야 준우에게 미소를 보이기 시작했다. 한 걸음 다가온 이웃들은 이제 준우를 보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부를 묻게 되었다.
두 딸은 이미 오빠의 장애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부모와 우리의 이웃들이 준우를 따뜻하게 껴안은 가르침 덕분이다. 딸은 이제 오빠의 장애를 자연스럽게 설명할 만큼 자랐다. 오빠의 장애를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딸들도 한 번쯤 상처를 받기도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젊은 부부에게 아들의 장애를 설명했다. 우리 가족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딸들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딸들이 물었다. “아빠 왜 그 사람들은 오빠를 쳐다보지도 않는 거죠?” 나는 당혹해하지 않았다.
딸에게 나지막이 그리고 또렷하게 답했다. “세상에는 오빠보다 더 큰 마음의 장애를 가진 사람이 많으니 우리가 이해를 해야 한다”고.
자양중학교 2학년 2반 강준우 학생은 장애 학생이 있는 특수학급과 일반학급을 오가며 수업한다. 학교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튼실한 교육과 친구들의 보살핌은 정겨울 정도다. 소외되고 학대받는 학교 문제 뉴스는 지극히 일부인 셈이다.
이달 초 아들 준우와 10년 동안 몸의 대화를 일기한 책 ‘사랑 한 술’이 출간되었다. 책이 나오자 맨 먼저 아들에게 보여주었다. 아들은 책 제목을 읽더니 관심 없다는 듯이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창밖을 보며 혼잣말을 쏟아내더니 신나게 박수를 친다.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지난 세월을 떠올렸다. 아들을 통해 나는 인정하는 법을 배웠다.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손이다. 그러나 인정하는 순간 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