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올 5월 47명의 미국 연방하원 의원들이 존 보너 의장과 낸시 펠로시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보낸 연판장의 일부 내용이다. 이들은 양당 대표들에게 지난해 1년 시한으로 만들어진 ‘무예산 무세비 법안’을 영구 법안으로 만들기 위한 투표 절차를 하루빨리 진행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의회가 가장 기본적 책무를 다하도록 하는데 이 법이 필요하다”며 하원의장 등이 이처럼 “중요한 개혁”에 협조할 것을 요구했다.
일하지 않는 의원들의 세비 받을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의원들 스스로 개혁에 나선 것은 고질병이나 다름없는 의회의 무능 때문이다. 미국 의회는 지난 30년 동안 오직 4번 만 제때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최근 15년 동안에는 한 번도 법정 시한을 맞춘 적이 없었다. 지난해에는 건강보험 개혁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싸움을 벌이다 16일 동안이나 연방정부가 폐쇄되기도 했다.
개혁은 미국 의회와 의원들에게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무능 뿐 아니다. 로비스트들의 돈이 의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2년 사이에 7명들이 마약과 섹스 등의 추문으로 자신 사퇴할 정도로 의원들의 도덕적 타락은 심각하다. 의회는 미국 경제 회복에 가장 큰 걸림돌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올 6월 갤럽 여론조사에서 미국 의회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7%에 지나지 않았다. 조사가 시작된 이래 41년 동안 가장 낮았다. 군대가 74%, 경찰 53%, 대통령 29%, 신문 22%인 것에 비하면 의회에 대한 믿음은 참담한 수준이다. 지난해 10% 등 조사할 때마다 신뢰도는 떨어지고 있다.
의회는 공산주의나 북한, 교통체증, 이빨 신경치료, 바퀴벌레보다 인기가 없다고 조사되었다. 극단적 조롱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국민들은 그만큼 의회가 싫다고 한다. 라스무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아무리 나라의 전망이 어둡더라도 의회는 언제나 일을 악화시키는 방법을 찾는 존재라고 불신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한심한 집단이라는 의미.
갤럽은 대의민주주의 근간인 의회의 심각한 위기라고 진단했다. 미국 의회는 더는 물러설 곳이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 의회는 대통령도 연방대법원도 개혁할 수 없다. 오죽했으면 의원들 스스로 일 안하면 세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을까. 개혁에 매달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할 것이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 의회가 이 지경이니 다른 나라 의회나 정당은 말할 것도 없다.
○ 우리 국회 ‘무노동 무임금’ 적용해야
우리나라 국회에 대한 평가와 신뢰도는 어떨까. 우리 국민들의 국회와 의원들에 대한 반감은 브라질 정도는 아니더라도 미국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새삼 거론해봐야 민망함만 더 할 뿐이다. 그 상황을 잘 알기에 여야 모두 ‘혁신’에 정당의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국회의 숱한 문제를 이념적 차이에 따른 극단의 대결구도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이념에 상관없이, 돈 때문에 줄줄이 구속되는 의원들의 개인 행태와 허세에 가득 찬 여의도의 정치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국회나 정치인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저평가를 극복할 수 없다. 나쁜 짓하는 의원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자진 사퇴하는 풍토를 정당들이 조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일 안하는, 일을 외면하는 국회를 의원들이 스스로 응징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제때에 일을 끝내는 것이 어디 미국만의 원칙이며, 미국 의회에서만 잊힌 일인가. 우리나라 국회도 똑 같은 원칙이 있는데 왜 의원들은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예산을 늑장 처리하는가. 올 들어 지금까지 국회에 제출된 법안과 결의안은 2885건이나 처리 건수는 70건(0.024%)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인처럼 월급받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우리나라 국민들도 이처럼 일 안하는 의원들을 보며 좌절하고 분노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의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개혁에 나서지 않는가. 아직도 절박하지 않은가.
국회의원 세비를 기본수당, 의정활동비, 회의수당 등으로 세분화해 일 한만큼 돈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국회를 개혁하기 위한 너무나 명백한 방법이요, 간단한 일이다. 국회의 ‘무노동 무임금’ 법안을 어느 정당이 먼저 제안할 것인가. 여야 간 혁신 경쟁의 승자는 거기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