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택동 정치부 차장
최근 만난 한 중진의원의 술회다. 여기서 ‘2004년’의 의미는 이른바 ‘오세훈 법’으로 불리는 개정 정치자금법을 가리키는 것이다. 정당 후원회를 금지하고,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한도를 연 1억5000만 원으로 정하는 등 정치자금 모금을 제한한 까닭에 정치인들은 “숨통이 막힌다”고 푸념한다.
이런 ‘엄혹(?)한’ 환경 속에서 정치인들의 숨통을 틔워준 것이 출판기념회다. 정치자금의 범위에 출판기념회로 얻은 수익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제한 없이 ‘책값’을 명분으로 돈을 모을 수 있다.
정치인이 낸 책 중에 간혹 화제의 베스트셀러가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활동을 소개하거나 소신을 밝히는 내용이어서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기는 어렵다. 그런 탓에 평소 친분 있는 사람들을 출판기념회에 초청해 책을 홍보하고 파는 것까지는 눈감아 줄 수도 있다. 문제는 책값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것이다. 본인과 최측근만 아는 비밀이기는 하지만 보통 국회의원들이 출판기념회를 열면 억대의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한 권에 2만 원이 안 되는 책을 정가에 팔아서 이런 돈을 마련하기는 어렵다. 해당 정치인에게 뭔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사람들,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 사람들이 ‘금일봉’을 내놓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개선안을 논의하고 있다.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은 허용하되 책값을 정가로만 받든가 모금액에 상한선을 두는 방안이 유력하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일정액 이상의 책값을 내놓은 사람들 명단을 공개하는 방식의 개선안이 검토되고 있고, 새로 출범한 보수혁신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 이정현 최고위원은 최근 “의원 임기 중에 (아예)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도록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잘못된 관행을 없애기 위해 법을 고치고 개선책을 논의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고쳤으면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정치인들이 양심과 상식에 비춰 행동하면 해결될 일이다. 필요하지도 않은 책을 정가보다 비싸게 팔고 사는 일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장택동 정치부 차장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