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은 2주 전 국회 운영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26일 본회의를 개최하는 정기국회 일정을 협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비상대책위원장 영입 문제로 내분에 휩싸이고 ‘식물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호된 질책이 쏟아지자 정 의장은 26일에 국회 본회의를 개최하기로 직권 결정했다. 오늘이 국민 앞에 약속한 그날이다.
정기국회가 개회한 지 26일이나 경과했는데도 국회는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의 일정마저 잡지 못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오늘에야 의원 총회를 열어 국회 복귀 여부를 논의한다. 새정치연합 내에는 “더이상 국회에 불참하는 건 무리”라는 의견이 확산되는 추세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에도 기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책위는 어제 “진상조사위원회 내에 수사권과 기소권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보여줄 것을 (야당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할 것을 강하게 요구해온 기존 태도에서 한걸음 물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강경파들에게 제동을 걸고 이전과 다른 자세를 보여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어제 정 의장을 찾아가 “일방적으로 법안을 처리하면 후유증이 너무 크다”며 오히려 정 의장을 나무란 뒤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진전이 이뤄지지 않는 한 본회의 참석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회법 76조는 여야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회기 전체 및 당일의 의사일정 등을 정하고 본회의를 개의(開議)할 수 있는 권한을 국회의장에게 부여하고 있다. 국회는 이에 따라 본회의에 회부된 법안들을 오늘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문 의원의 ‘네트워크당’ 주장은 ‘시민 참여’라는 명분 아래 외부 강경파들을 끌어들여 차기 당권과 대권을 차지하려는 의도라는 시각도 팽배하다. 새정치연합은 더이상 친노 강경파들에게 끌려다닐 게 아니다. ‘대리기사 폭행사건’ 이후 국민의 시선이 더 차가워졌음을 직시해야 한다. 의회주의자임을 자처하는 문희상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이 당 소속 의원들을 설득하는 지도력을 보여줄 시점이다.
정 의장은 새정치연합이 오늘 본회의를 거부하더라도 국회법에 따른 의무와 권한을 다해 절차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 이달 초 그가 ‘15일 법안 처리’를 밝혀 놓고도 야당이 반발하자 맥없이 물러섰던 전철을 되풀이한다면 ‘허수아비 의장’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여야가 조속히 국회에서 긴급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새정치연합에 최고의 ‘비상대책’이 될 터이고, 새누리당이 요즘 외치는 ‘보수 혁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