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남성과 서양 여성 커플이 연애 사연과 사진을 올리는 블로그. AMWF LOVE 블로그 캡처
프랑스 남성 모델 줄리엔 강(32)이 대낮에 찢어진 속옷 차림으로 서울 강남 일대를 배회하다 경찰에 신고 당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25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글이다. 줄리엔 강은 조각 같은 얼굴에 키 191cm, 몸무게 87kg의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뽐내는 유명 모델이다.
찢어진 속옷 사이로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난 줄리엔 강을 찍은 사진이 SNS에 퍼지자 “똥송합니다!”라는 댓글이 잔뜩 달리기 시작했다. 요즘 SNS에서는 ‘흔한 스웨덴 길거리 남녀’라는 식의 제목으로 잘생긴 백인 남녀를 담은 사진이 올라오면 어김없이 이런 댓글이 붙는다. ‘똥송합니다’는 ‘동양인이라 죄송합니다’라는 뜻으로 동양인은 못났다는 자조적 인식을 담아 ‘동’을 부정적인 의미의 ‘똥’으로 바꿔 붙인 말이다.
자괴감은 질투로 전이된다. 일부 젊은이는 길거리에서 서양 남성과 한국 여성 혹은 서양 여성과 한국 남성이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비뚤어진 생각을 하기 십상이다. 서양인 남친을 둔 한국 여성을 두고는 ‘단지 사랑해서가 아니라 영어를 배우거나 신체적인 목적을 갖고 만나는 걸 거야’라고 여기거나, 서양인 여친과 손잡은 한국 남성을 보고 ‘저 남자는 분명 돈이 많을 거야’라고 지레짐작하는 식이다. 둘 다 ‘외모가 우월한’ 서양인과 교제하는 데에 대한 질투가 뿌리 깊게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인터넷 블로그 ‘AMWF LOVE’는 일부 젊은 한국 남성들이 ‘꿈과 희망’을 키우는 곳이다. AMWF는 ‘아시아 남성과 백인 여성(Asian Male White Female)’의 약자로, 아시아 남성과 백인 여성 커플이 자신들의 사진과 연애 과정을 적어 올리는 블로그다. 일부 남성 누리꾼은 SNS에 “우리는 비록 똥송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며 블로그 속 사연들을 분석해 나름대로 백인 여성과 만나는 방법 등을 연구해 올리기도 한다.
‘국뽕 논란’도 일부 한국인에게 자리 잡은 상대적 열등의식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전형적인 사례다. 국뽕은 국가와 히로뽕을 합친 신조어로 과도한 국수주의(國粹主義)를 꼬집는 말이다. 한국에 온 해외 유명 연예인은 방송에 출연하면 으레 김치를 먹거나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말춤을 추라고 강요받는다. 오죽하면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베스트3가 “두 유 노 유나 킴?(김연아를 아나요?)” “두 유 노 싸이?(가수 싸이)” “두 유 노 김치?”라는 자조 섞인 유머가 돌 정도다.
요즘 서양인들이 출연하는 국내 토크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데엔 ‘한국보다 우월하다고 여겼던 서양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잘하는 게 신기하다’고 여기는 심리가 일부 녹아 있다. 한국인이 프랑스 방송에 출연해 그 나라 말을 유창하게 한다고 해서 프랑스인이 신기하게 여기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해당 토크쇼에 출연하는 외국인 남성 11명 중 8명이 서구적 외모의 백인이다.
조동주 사회부 기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