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에는 다른 약칭으로 불리는 한 단체가 있습니다. 22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창립 40주년 감사미사를 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입니다.
이 단체는 오랜 관행에 따라 흔히 사제단으로 불리고 있지만, 이 명칭에 대한 가톨릭 내부의 거부반응도 만만치 않습니다. 알려진 대로 이 단체는 1970, 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 크게 기여하고 사회적 약자 보호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단체에 대한 가톨릭 분위기를 취재하다 보면 공통된 요청을 받게 됩니다. 인터뷰에 응한 신부들이 자신의 의견을 밝힌 뒤 “정구사 알지 않느냐. 내 이름 나가면 여러 명이 행패 부리고 인터넷에 비난하는 탓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꼭 익명으로 해 달라”는 것이죠.
이날 이 단체의 전 대표인 전종훈 신부는 미사강론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암흑 속의 횃불이 돼야 하는 게 시대적 소명”이라고 했습니다. 전 신부는 또 “세월호 유족에게 양보하라는 추기경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교황과 뜻을 같이해야 할 교구장의 이런 발언은 사제의 첫 마음인 십자가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라며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을 비난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전 신부는 염 추기경의 ‘아들 신부’입니다. 교계에서는 신학대에 진학할 때 추천서를 써주거나 서품식 때 사제의 직책과 의무를 상징하는 영대(領帶)를 주는 신부를 ‘아버지 신부’라고 부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이 무엇이냐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아들 신부가 아버지 신부를 공개석상에서 부끄럽다고 해야 했을까요? 더구나 염 추기경의 주교좌성당인 명동대성당에서 40주년 미사를 진행하면서 말이죠.
교계에서 진보적으로 평가받는 강우일 주교가 이 단체에 보낸 축사는 귀담아들을 만합니다. “진실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비판을 두려워할 것은 아니지만 참된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려면 생각이 다른 이들도 배척하지 않는 아량과 관용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