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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방형남]아베와 김정은에게 없는 것

입력 | 2014-09-27 03:00:00


방형남 논설위원

북한과 일본이 벌이고 있는 납치자 협상은 일종의 가면극이다. 북한은 주민을 끔찍하게 탄압하면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하자며 성의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책임은 부인하면서 자국인 구출을 위해 북한과 손을 잡았다. ‘납치문제 해결’이라는 고상한 탈을 쓰기는 했지만 북한과 일본 정권의 속셈은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 실현과는 거리가 멀다.

올 유엔 총회는 일본과 북한의 일그러진 인권관(觀)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유엔 총회 연설에서 “20세기에는 분쟁 상황에서 여성의 명예와 존엄이 심각하게 훼손된 역사가 있었다”고 지적했지만 정작 전시 성폭력의 대표 사례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그러면서 또 한일 정상회담을 하자고 주장했다. 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는 연설에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려는 욕심을 드러냈다. 인권을 놓고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일본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북한은 유엔의 본격적인 인권 문제 제기를 모략극으로 규정하면서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북한인권조사보고서가 몰고 올 파장을 헤아리지 못한 구태의연한 대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관계 악화 위험을 무릅쓰고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했다. 북한의 인권 탄압은 어느덧 국제 현안이 됐다. 북한이 인권 탄압을 인정하지 않고 버틸수록 유엔의 인권 개선 요구는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북한과 일본의 반(反)인권 비(非)인권적 태도는 지도자인 김정은과 아베가 가진 인권 의식의 산물이다. 그들은 인권을 인류 보편의 가치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는 진리도 외면하고 있다. 외국인의 존엄성은 부정하면서 자국인의 권리만 챙기려는 일본도, 자국 주민은 짓밟으면서 일본인 납치 사건 해결에 매달리는 북한도 인권 후진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5·24 대북(對北) 제재조치 해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간이 꽤 흘렀으니 잊자는 것인가.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은 6년 전 일이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은 불과 4년 전에 발생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는 1970∼80년대에 집중적으로 자행됐다. 김정은은 경제적 지원을 노리고 30, 40년 전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이 저지른 외국인 납치 범죄를 인정하려 하고 있다. 반면 천안함 폭침과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남한 국민에게 저지른 악행은 모른 체한다. 그런데 왜 화해 조치가 필요한가.

일본이 위안부를 비롯한 과거사에 대해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한일 정상회담을 촉구하는 것도 사려 깊지 못한 발상이다. 일본은 일제강점기 북한에 거주하다 행방불명된 일본인의 생사 확인까지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같은 시기에 발생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 인정은 한사코 거부한다. 아베는 북한의 핵 개발에 맞서 굳건하게 유지돼온 한미일 공조를 훼손한다는 지적도 무시하고 있다.

일본과 북한 지도자가 인간에 대한 선의(善意)를 갖고 있다면 이렇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한국과 관계 개선을 하려는 성의가 있다고도 할 수 없다. 인권문제 해결을 막는 근원적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봉합하면 불상사는 또다시 터진다. 북한과 일본의 책임을 적당히 덮고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남북한과 한일이 제대로 화해하기 위해서는 김정은과 아베의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