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 전준호의 ’마지막 장인’
맹문재(1963∼)
개울가에서 아픈 몸 데리고 있다가
무심히 보는 물속
살아온 울타리에 익숙한지
물고기들은 돌덩이에 부딪히는 불상사 한번 없이
제 길을 간다
멈춰 서서 구경도 하고
눈치 보지 않고 입 벌려 배를 채우기도 하고
유유히 간다
길은 어디에도 없는데
쉬지 않고 길을 내고
낸 길은 또 미련을 두지 않고 지운다
즐기면서 길을 내고 낸 길을 버리는 물고기들에게
나는 배운다
약한 자의 발자국을 믿는다면서
슬픈 그림자를 자꾸 눕히지 않는가
물고기들이 무수히 지나갔지만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저 무한한 광장에
나는 들어선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다. 점심시간에 회사 앞 청계천을 걷는다. 높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충만한 가을을 느낀다. 얕게 흐르는 물 밑으로 물고기들이 어울려 헤엄치는 모습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크다. 생명의 힘이 담긴 물고기들의 율동을 보며 맹문재 시인의 작품이 생각났다.
지금 서울 삼청로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는 전준호 씨의 개인전에 가면 거대한 거울 위에 엎드린 목조 해골을 볼 수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절하는 자세다. 양 팔꿈치와 양 무릎, 이마까지 바닥에 대고 있는, 이른바 오체투지(五體投地)의 해골은 서늘한 여운을 남긴다. 불교에서 절은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을 배우는 수행방법이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누가복음 말씀처럼 기독교도 겸손의 힘을 강조한다.
홍콩 출신 세계적 부호인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은 삶의 나침반으로 삼기 위한 ‘교만지수’를 직접 만들었다. 내가 지나치게 교만해진 것은 아닌지, 나의 말과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책임지길 원하는지 등을 수시로 자문자답한다는 것이다. 재산이 많다고 지위가 높다고 오만에 빠지면 그 인생은 실패를 피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이 더는 통하지 않는 걸까. 한 국회의원이 대리기사에게 “내가 누군지 알아?”라며 윽박지른 사건으로 세상이 들끓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그의 선민의식과 무례함은 분노를 넘어 서글픔을 안겨준다.
“군주의 지위가 반드시 고귀한 것이 아니고, 가난함이 반드시 천하기만 한 게 아니다. 귀하고 천하고의 차이는 행동의 아름다움과 추함에 달려 있다.”(장자)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남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한국 사회의 불행한 초상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나를 낮추는 마음은 참된 자신감에서만 나올 수 있다. 아름다운 겸손이 그리운 세상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