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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최영훈]최인호의 눈물

입력 | 2014-09-29 03:00:00


지난해 9월 25일 타계한 작가 최인호는 생전에 영원한 문학청년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후배 작가가 참신한 글을 쓰면 꼼꼼히 읽은 뒤 찾아가 격려해주곤 했다. 후배들의 새로움을 ‘질투’하는 것이 그를 만년 청년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들 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여백출판사 안에 있는 집필실로 그를 찾아오는 후배 작가들에게도 늘 살갑게 대했다.

▷몇 년 전 그가 창작의 고통을 호소하는 후배를 위로하던 장면이 새삼 떠오른다. “50년 가깝게 소설을 쓴 나도 창작의 썰물 때는 정말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때는 펜을 놓고 막심 고리키나 안톤 체호프 같은 대작가의 주옥같은 단편들을 다시 읽으며 숨을 고른다.”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선 진지한 표정으로 그는 말을 이어갔다. 전업 작가의 험난한 길로 들어선 지 몇 년 안 된 젊은 작가가 ‘청년작가’ 최인호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모습이 생생하다.

▷‘인호가 세상을 떠났다. 나쁜 녀석. 영정 앞에 향불을 피우며 욕을 했다. 내 가슴에 그렇게 큰 구멍을 하나 뚫어놓고 먼저 가버리다니….’(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최인호는 생전에 이어령 전 장관과 각별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이 전 장관의 부인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가 관장으로 있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최인호의 1주기 기념전시회를 마련했다. ‘별들의 고향’ ‘상도’의 육필 원고와 글쓰기 메모, 스크랩, 영화광고, 애장품 등 거의 모든 자료가 11월 8일까지 공개된다.

▷이 전시회에서 ‘원고지 위에서 죽고 싶다’는 글귀와 양 손바닥이 찍힌 동판에 시선이 머물렀다. 최인호는 암 투병 중에도 “이 자식들아 ‘난 살아있다’고 매일 외친다”고 유쾌하게 말했다. 생전에 날려 쓰는 악필로 유명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원고지 등에 남긴 짧은 글귀는 또박또박 정성을 들여 이채롭다. 강 관장은 “그가 남긴 유품 중에서 가장 감동을 주는 것은 마지막 날 성모님께 기도하면서 흘린 눈물 자국이 허옇게 번져있는 책상과 손톱 빠진 자리에 꼈던 골무”라고 말했다. 이 가을 그가 그리워진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