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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양승태 체제 3년’ 분석]서울대-수도권요직 거친 ‘엘리트코스 7인’ 다수의견 이끌어

입력 | 2014-09-29 03:00:00

전현직 대법관 18명 ‘판결 네트워크’




2011년 9월 27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 전반기 3년간 이뤄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과반의 정통 엘리트 법관 출신들이 주도해온 것으로 분석됐다. 양 대법원장이 이끄는 정통 법관 출신 그룹은 전임인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에 임명된 안대희 전수안 김능환 박일환 전 대법관과는 차이를 보였다.

○ 과반의 정통 법관 그룹이 주도

본보가 28일 사회관계망분석(SNA) 프로그램 ‘유씨넷(Ucinet)’을 활용해 ‘양승태 대법원’ 전반기인 2012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내려진 전원합의체 판결 61건을 분석한 결과 재판에 관여한 대법원장과 전현직 대법관 등 18명은 크게 4개 그룹으로 나뉘었다. 이 가운데 양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양창수 전 대법관과 신영철 민일영 이인복 이상훈 김용덕 박보영 대법관으로 구성된 ‘1그룹’이 가장 다수를 형성했다.

대법원의 강력한 다수파로 분류된 1그룹에는 양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전현직 대법관 7명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중심축 역할을 했다. 이들이 같은 의견을 낸 사례는 분석 대상 61건 중 절반에 가까운 29건에 이른다. 학계 출신인 양창수 전 대법관이 국내 민법학계 최고 권위자이고, 법관 출신인 다른 대법관들도 법원행정처와 수도권지역 주요 법원의 요직 등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여성에 비서울대 출신인 박보영 대법관은 이른바 50대 중후반 남성에 서울대 출신인 이들과 다른 성향을 보일 것 같았지만 정통 법관 그룹과 가까운 의견을 제시했다.

현직 대법관만을 놓고 보면 전원합의체에 참여하는 13명 중 양 대법원장을 포함해 7명이 1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양 전 대법관 후임으로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낸 권순일 대법관이 합류하면서 대법원의 주류는 상당 기간 다수파의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 법조계 인사는 “법리에 충실하고 이념적으로는 보수적인, 그리고 예측 가능한 대법원 판결이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 소장파 4인방과 조희대 대법관, 새 흐름 만들까

고영한 김신 김창석 김소영 대법관이 형성하는 ‘신진 2그룹’과 조희대 대법관이 차지하는 위치는 독특하다. 김신 대법관은 향판 출신이자 장애인, 김소영 대법관은 여성, 김창석 대법관은 비서울대 출신이라는 특징이 있고 2012년 하반기 대법원에 합류한 이후 정통 법관 그룹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달 부동산 대물변제 약정을 어겼을 때 이를 배임죄로 처분해 온 수십 년간의 관례를 깨뜨린 판결에서 이들은 나란히 판례 변경을 주도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다른 재산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인정돼 온 재산인 부동산의 가치가 종전보다 하락한 시대적 흐름이 반영됐고, 배임죄 처벌의 범위를 좁힌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들은 도박중독자에 대한 강원랜드의 책임 여부를 다툰 사건에서도 일부 배상책임이 인정된다는 반대 의견을 함께 냈다.

올해 3월 합류한 조희대 대법관은 대법원의 주류인 정통 법관 그룹은 물론이고 소장파 4인방과도 다른 목소리를 냈다. 오히려 진보적 성향의 판결을 해 ‘독수리 5형제’로 불렸던 전수안 전 대법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인 안대희 전 대법관과 비슷한 네트워크 구도를 형성했다. 실제로 조 대법관은 전원합의체 참여 수는 적지만 이인복 김신 대법관 등과 7차례 중 3차례나 의견을 달리했다.

법원행정처장으로 이제는 재판에 참여하지 않는 박병대 대법관의 위치도 이채롭다. 혼자 떨어져 있지만 1그룹과 크게 의견이 갈리지 않으면서도 2그룹과도 일치도를 보였다. 법적 안정성은 물론이고 구체적 타당성에도 힘을 쏟는 그의 판결 성향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법원 관계자는 “박 대법관은 사건을 깊게 보지만 넓게도 볼 줄 안다. 법리적으로 옳지만 소수의견으로 남을 것 같으면 다른 대법관과 의견을 절충하거나 의견을 교환해 다수 의견에 반영하려 애쓴다”라고 말했다.

○ 다양한 시각 가진 대법관 더 필요

“한 마리의 제비로서는 능히 당장에 봄을 이룩할 수 없지만 그가 전한 봄, 젊은 봄은 오고야 마는 법. 소수의견을 감히 지키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고 민문기 전 대법원 판사(지금의 대법관)가 남긴 유명한 문장이다. 전원합의체에 대법관들이 갖는 부담감은 생각보다 크다. 다른 대법관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소수의견으로 남고 마는 대법관들의 스트레스도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국민 생활과 기본권에 큰 영향을 끼치는 최고 법률심이다. 지혜의 기둥인 대법관들이 각자의 영혼이 담긴 다양한 시각을 용광로처럼 녹이는 곳이다. 대법원이 정책법원으로서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선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가 필요조건인 셈이다.

그러나 이번 분석에서 ‘양승태 대법원’은 정통 법관 출신이 밀집해 다수파를 형성하는 구조로 나타났다. 신임 대법관을 제청할 때마다 대법원은 “다양한 재판업무와 사법행정을 담당했다”라는 표현을 빼놓지 않고 있다. 이는 법리나 재판에 익숙한 정통 법관이 주류를 차지하지 않으면 1년에 3만6000건이나 되는 사건을 처리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하지만 상고법원을 설치해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최고법원의 위상을 세우려는 대법원의 미래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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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과 가장 의견이 일치했던 대법관은 누구일까. 양 대법원장처럼 정통 법관 출신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서울대 법대 교수 출신인 양창수 전 대법관이었다. 두 사람은 61건의 전원합의체 판결 중 57건(93.4%)에서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통상 대법원장은 자기 의견을 개진하기보다 다수 의견이 모아지면 그쪽에 참여하는 것이 관례여서, 이를 감안하면 양 전 대법관은 가장 많이 다수 의견 편에 섰다는 얘기가 된다.

광주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나온 고영한 대법관과 충남 보령 출신으로 고려대 법대를 나온 김창석 대법관은 대법관 임명 시기가 같다는 것 외에는 유사점이 없다. 그러나 전원합의체 판결 40건 중 39건에 같은 의견을 내 의견일치도(97.5%)가 전체 대법관들 사이에서 가장 높았다. 두 대법관은 하급심 재판장 시절에 소신 있는 판결을 자주 냈고, 대법원에 와서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장애인인 김신 대법관은 현직 대법관 중 소수의견을 낸 비율이 22.5%로 가장 높다. 그는 ‘통상임금’ 판결에서 “다수의견의 논리는 너무 낯설어 당혹감마저 든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반면 서울대 출신인 조희대 대법관은 전원합의체 판결 중 42.9%의 사건에서 김 대법관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둘은 주류 그룹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닮은꼴’이다. 국회 인사청문회 때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다각도에서 사건을 바라봄으로써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판결”을 말했던 조 대법관이 김 대법관 못지않은 ‘소수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인사청문회 때 “하늘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의 바람으로 대법관이 됐다”고 얘기했던 김소영 대법관은 소수파로, “여성 법조 선배들이 나에게 걸고 있는 기대에 부응하겠다”던 박보영 대법관은 다수파로 각기 다른 성향을 보이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 성향은 대법관들 간의 1 대 1 일치도로 분석했을 때도 이처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즉,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를 위해서는 출신과 학력, 직역뿐 아니라 법률에 대한 가치관이나 과거 판결 성향 등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장관석 jks@donga.com·신동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