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6월 평양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윌리엄 얼 쇼 부부의 외아들로 태어난 쇼 대위는 평양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1943~1945년 미해군 초계어뢰정 부장(중위)으로 근무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다. 전역한 뒤에는 해사의 전신인 '조선 해안경비대 사관학교'의 교관으로 생도들에게 영어와 함정 운용술을 가르치는 등 창군 시기 한국 해군 발전에 기여했다.
1950년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2의 조국'인 한국과 자신이 가르쳤던 생도들을 돕겠다는 의지로 해군 대위로 자원입대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당시 부모에게 "전쟁의 고통에 신음하는 한국인을 돕지 않고 전쟁이 끝난 뒤 선교사로 한국에 간다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정부는 1956년 쇼 대위에게 금성 충무무공훈장을, 미국 정부는 은성훈장을 각각 추서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