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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가 말하는 나의 AG] 장재근 “86년 서울AG 임춘애가 육상 스타 돼 있어 부담 컸다”

입력 | 2014-09-30 06:40:00

세계무대에 한국 단거리육상의 존재감을 처음 알린 장재근.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남자 200m에서 그가 금메달을 따던 당시의 모습이다. 스포츠동아DB


7. 육상 장재근

82년 뉴델리AG서 한국 단거리육상 첫 AG 금메달
서울AG땐 200m 2연패 ‘육상의 전설’ 수식어 얻어
3번째 도전 90년 베이징AG 7위 가장 아쉬움 남아

한국은 육상의 불모지다. 특히 단거리에선 세계 수준과 격차가 크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무대에 한국 단거리육상의 존재감을 알린 주인공도 지금까지는 장재근(52)이 유일하다. 그는 1982년 뉴델리대회와 1986년 서울대회에서 2회 연속으로 아시안게임 남자 200m 금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단거리육상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그가 기록한 200m 한국기록 20초41은 여전히 난공불락으로 남아있다.

● 운이 좋은 선수?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서 우리의 목표는 400m 계주에서 동메달을 따는 것이었다. 그러나 4위에 그치면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더 이상 목표가 없었다. 그러다 100m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실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내가 은메달을 땄다. 솔직히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터라 얼떨떨했다.”

장재근은 32년 전의 기억을 이렇게 떠올렸다. 100m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은메달을 따면서 그는 하루아침에 육상 스타가 됐다. 그리고 얼마 뒤 200m 결승이 열렸다. 이 때도 그의 메달을 기대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100m에서 은메달을 땄으니 목표를 초과달성한 셈이 됐다. 더 이상 이룰 것도 없었다. 그래서 200m는 너무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1등으로 골인했다. 진짜 운이 좋았다.”

아시안게임 단거리육상에서 한국의 첫 금메달이었다. 이미 100m에서 은메달을 따면서 스타가 됐던 장재근은 200m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영웅’이 됐다. 그러나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200m에서 내가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금메달을 따고도 현장에서 누구 한 사람 나를 취재한 이가 없었다. 우리나라 방송국에선 단 한 곳도 취재를 나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당시의 우승 장면은 지금도 다시 볼 수가 없다. 아쉬울 뿐이다.”

1982년 뉴델리대회가 끝난 직후 장재근의 이름 앞에는 ‘운이 좋은 선수’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실력은 모자랐지만, 운으로 땄다는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이 수식어는 오래 가지 않았다. 1985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아시아신기록 겸 한국신기록(20초41)을 세우면서 단거리육상의 1인자로 우뚝 섰다.

● 임춘애가 먼저 메달 따니 더 부담스럽더라!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은 큰 부담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첫 아시안게임이었고, 무엇보다 19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예행연습처럼 진행돼 국민적 관심이 컸다. 게다가 4년 전 기대이상의 성과를 올렸던 터라, 많은 이들은 장재근이 이번에도 당연히 메달을 딸 것으로 기대했다. “86년 아시안게임에선 이미 임춘애가 육상 스타가 돼 있었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관심도 컸고,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나에게 집중됐다. 그만큼 부담은 더 커졌다.”

장재근의 금메달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200m 결승에 오른 선수 가운데 경쟁자는 중국의 리핑이 유일했다. 장재근과 리핑만 20초대의 기록을 갖고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21초대였다. “리핑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견제할 선수가 없었다. 잘 뛰는 선수고 중국을 대표하는 육상 스타였다. 약간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이길 자신이 있었다.” 20초71에 골인한 장재근은 아시안게임 2회 연속 금메달이라는 신화를 썼다. 그의 이름 앞에는 ‘육상의 전설’이라는 새로운 수식어가 붙었다.

● 아쉬웠던 1990베이징아시안게임

한국육상의 전설이 된 장재근은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에서 3번째 도전에 나섰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86년 금메달에 이어 88년 서울올림픽을 끝내고,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이 있었다. 올림픽이 끝난 직후 운동을 계속할 것인지 줄곧 고민했다. 실업팀에 갈 수도 있었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아지면서 방황했다.”

금메달은 아니어도 최소 동메달 정도는 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장재근은 결승에서 7위로 골인했다. 그의 마지막 아시안게임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은메달 정도는 딸 수 있을 만한 실력이었다. 그러나 너무 긴장했고, 복잡한 심정 등으로 인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기였고, 선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다.”

장재근은 현재 화성시청에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는 해설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스포츠동아와 전화인터뷰를 하던 날, 때마침 그는 남자 100m에 출전한 김국영(23·안양시청)의 경기를 지켜본 뒤였다. “경기에선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앞으로도 경기를 계속해야 한다면 빨리 털어내고 다음을 준비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자책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전설이 된 선배는 결승 진출에 실패한 후배에게 이렇듯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트위터 @na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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