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수필’의 작가 이문구(1941∼2003)는 1961년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조세희 박상륭 등 쟁쟁한 신입생들을 제쳐두고 당시 교수였던 소설가 김동리는 그를 ‘한국 문학의 희귀한 스타일리스트가 될 것’이라 예견했다. 스승의 혜안은 탁월했다. 1966년 등단한 그는 풍요로운 토박이말을 구사한 이야기꾼으로서 한국 문학의 우뚝 솟은 봉우리였다. 6·25전쟁 때 남로당 간부인 아버지로 인해 풍비박산에 내몰린 집안과 밑바닥 삶은 그를 가난하고 핍박받는 이들의 아픔을 보듬는 문학의 길로 인도했다.
▷이념으로 갈라진 한국 문단 지형도에서 그는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문인들에게 두루 존경받는 작가다. 순수와 참여 문학을 가리지 않고 문단의 마당발로 묵묵히 궂은일을 도맡았고, 올곧은 삶의 태도에 보수와 진보의 울타리를 넘어 공명했기 때문이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양 진영을 대표하는 단체들이 힘을 모아 장례식을 치렀다. 문단 반세기 사상 처음이었다.
▷그는 1974년 시인 김지하 등 긴급조치 구속인사 석방운동을 매개로 출범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의 주역 중 한 사람이다. 1987년 자실을 개편한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이사장도 지냈다. 문단의 보수와 진보를 아울렀던 이문구의 빈자리가 새삼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2007년 이름을 다시 바꾼 한국작가회의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어제부터 ‘작가회의 통신’을 시작했다. 매주 월요일 홈페이지에 사회 이슈에 대한 작가들의 에세이를 올릴 계획이다.
▷서슬 퍼런 독재에 저항했던 ‘자실’에서 발전한 작가회의는 근년 들어 용산 참사, 쌍용차 농성, 강정 투쟁, 밀양 송전탑반대운동 등 사회 이슈를 숨 가쁘게 좇아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선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한다. 올 2월 이시영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우리는 특정 정파를 지지하는 정치집단도 아니며, 그렇다고 불의와 민주주의의 역사적 퇴행에 눈감고 침묵하는 무책임한 단체는 더욱 아니다”고 밝혔다. 불혹의 나이를 맞은 작가회의가 어떤 길로 나아갈지 주목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