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시리즈 2014’ 첫 기획전 이불의 설치작 ‘태양의 도시 2’
이불 씨의 설치작품 ‘새벽의 노래 3’. 알루미늄으로 뼈대를 엮은 뒤 폴리카보네이트와 금속성 필름을 붙여 파열하는 순간의 유선형 동체를 빚었다. 하단부에 숨긴 기계장치가 1시간 간격으로 압축수증기를 뿜어낸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무릎을 펴고 고개를 든다. 직육면체 공간을 가득 채운 빛의 난반사 덩어리가 훅 하고 아찔하게 다가든다. 단순한 얼개의 설치물 집합체는 커다란 빛의 덩어리로 생장해 있다. 복닥복닥 피곤했던 도시 위를 막 이륙한 저녁나절 비행기 창밖을 내다봤을 때처럼, 말없이 멍해진다. 아름답다.
이 대형 설치작품은 내년 3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현대차 시리즈 2014’ 첫 번째 기획전에 선보인 이불 씨(50)의 ‘태양의 도시 2’다. 이 씨는 현대자동차가 10년 동안 해마다 12억 원을 지원해 중견 작가의 신작을 소개하도록 한 장기 기획전의 첫 작가로 선정됐다. 1980년대 과감한 인습파괴 퍼포먼스 작업을 시작해 1990년대 기계와 유기체의 결합체 ‘사이보그’ 시리즈로 해외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작가는 2000년대 중반 착수한 설치작업 연작 ‘나의 거대서사’ 연장선상에서 오래 기억할 만한 두 개의 결정체를 빚어냈다.
594㎡ 면적의 전시실을 아크릴유리로 채운 ‘태양의 도시 2’. 이불 씨의 작품 중 가장 큰 규모다. 작품을 관람하기보다 공간에 파묻혀 체험하도록 했다.
드문드문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꽂은 파편 덩어리는 얼핏 간조의 개펄을 닮았다. 관람객은 신발이 젖을까 조심하듯 더듬더듬 통로를 나아간다. 전시실 사방 벽을 두른 아크릴유리 패널이 바닥으로부터 난반사된 빛을 다시 튕겨내 공간을 어지럽게 확장한다. 한쪽 구석에 모아 꽂은 LED 빛글자 ‘CIVITAS SOLIS(태양의 도시)’가 공간 전체를 휘돈다. 재료의 잘 휘는 특성이 정적인 작품에 묘한 운동감을 부여한다.
이어지는 전시실의 15m 높이 천장에 매단 설치작품에는 ‘새벽의 노래 3’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씨는 “격정적인 밤을 함께 보낸 연인을 떠나보내며 부르는 독일 노래 ‘오바드(aubade)’의 개념을 담았다”고 했다. 금속 프레임과 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든 커다란 유선형 물체가 네 갈래로 쪼개진 모양새다. 모티브 중 하나는 1937년 폭발사고로 추락한 독일의 대형 비행선 힌덴부르크호. 추락하며 분해되는 비행선을 감싼 연기처럼 압축수증기를 분사하는 장치를 달았다.
이 정도 규모의 설치작업은 처음이라는 이 씨는 “소설가에 비유하자면 이제 비로소 장편을 써낸 기분”이라며 “관람객이 작품에 담은 뜻을 ‘이해’해주기보다는 그저 담담히 ‘경험’해주길 원한다”고 말했다. 다음 달 15일 오후 6시 반에는 관람객을 위한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02-3701-9500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