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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양섭 전문기자의 바둑人] 이창호 동생 이영호, 이세돌과 밤늦게 술마시며…

입력 | 2014-10-02 13:46:00


중국에서 사업도 하고 있는 그는 10번기 기간내내 이세돌을 뒷바라지했다. 충칭=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이영호" border="0">-이영호" border="0">-이영호" border="0">-이영호" border="0">-이영호" border="0">-이영호" border="0">이창호 9단의 친동생 영호 씨(38)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창호의 동생이지만 바둑을 배우다 말았다. 전자계산기학과에 다니던 대학시절부터 중국에 빠진 뒤 근 20년간 중국관련 업무를 해온 중국통이다. 지금은 중국에서 휴대전화 부품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또 베이징(北京)에서 이세돌 9단과 공동으로 '이세돌 바둑교실'을 운영 중이다. 10번기를 성사시킨 조역이며, 10번기 내내 이세돌을 뒷바라지했다. 그를 지난달 28일 중국 충칭(重慶)에서 열린 'Mlily 멍바이허(夢百合) 10번기' 8국 날 검토실에서 만났다.

―먼저 10번기에서 이세돌 9단이 승리한 것을 축하한다.

"이제 중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 않게 돼 기쁘다. 이세돌은 '10번기에서 지면 은퇴할 수도 있다'는 말을 얼핏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구리(古力)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지는 못했다. 아마 그게 승부를 가른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를 통해 10번기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충칭 대회는 열리지 못할 뻔했다. 티베트 라싸(拉薩)에서 열린 7국에서 구리가 패하며 이세돌의 5승이 확정되던 날 충칭 대회를 후원하기로 한 서브스폰서가 "충칭 대회를 후원할 수 없다"고 밝혀 발칵 뒤집혔다는 것. 메인 스폰서인 헝캉그룹의 니장건 회장과 중국기원은 대책을 논의하는 등 바쁘게 움직였다. 우여곡절 끝에 다른 서브스폰서를 구해 대회를 치르기는 했지만 이 소동이 구리에게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그의 짐작이다.

또 티베트와 샹그릴라에서 열린 고산(高山)대국은 "중국 측의 작전 미스"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고산증은 체격이 큰 사람이 발병하기 쉬운데 체격이 이세돌보다 큰 구리가 불리한 곳이었다는 것. 실제 구리는 지역행사에도 불려나가 훨씬 피곤해했다고.

"10번기는 두 사람 모두에게 큰 부담이었다. 이세돌은 충칭 대국 때도 새벽 3시까지 잠을 설치다가 4시간 정도밖에 눈을 붙이지 못하고 대국에 임했다. 구리도 그랬겠지만 이세돌도 패배했을 때 아파했다고 했다. 그런 때는 같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다. 8국이 치러지는 동안 이세돌도 흰머리가 늘었지만 구리의 흰머리도 세 배 정도는 는 것 같다."

그는 "그동안 3차례나 10번기가 무산됐다가 이번에 성사됐다"며 "그동안 중국기원이 부담을 가졌는데 중국 바둑의 기세가 오른 데다 구리의 팬인 니장건 회장이 700만 위안을 쾌척했기 때문에 성사된 것"이라고 말했다. 니 회장은 라텍스 침대와 베개를 미국과 유럽에 수출해 큰돈을 번 젊은 사업가. 이창호 9단(39)과 동갑이다.

―중국리그에 참가한 형 이창호도 뒷바라지했는데, 누가 더 힘들었는가.

"아무래도 형이 더 편했다(웃음). 하지만 형이 몸이 약해지고는 달라졌다. 대국 전날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나도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형이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 이세돌은 자극적인 음식도 가리지 않는 편이고 술도 잘 마셔 함께 지내기가 편했다."

―어려서 형과 바둑을 함께 배우지 않았나.

"할아버지는 만주에서 시계 고치는 기술을 배워 전주에서 시계방을 해 돈을 많이 번 유지였다. 사람 보는 눈이 남달랐던 할아버지는 우리 세 형제 중 둘째인 창호 형만 기원에 데리고 다니며 바둑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나는 형보다 한참 늦게 시작한 것 같다. 그러나 재미가 없어서 배우다 말았다." 세 형제 모두 연년생이다. 큰형은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그는 중학교 때 좋아하던 여학생 때문에 한문학원에 같이 다니며 대학 명심보감 등을 외다시피 했는데, 정작 여학생 앞에서는 숙맥이었다. 고백은 못했지만 전주고 1학년 때 국어성적이 굉장히 좋았다고 했다. 그는 인하대 전자계산기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도무지 재미가 없었다. 2학년 때 중국 어학연수 5주를 간 게 그의 인생을 바꿔 놨다. 그 뒤 중국을 배워야겠다며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4개월 동안 중국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성격도 외향적으로 바뀌어갔다. 그는 "방학 때마다 100만 원 정도를 들고 돌아다녔는데 웬만한 중국 사람보다 많이 다녔을 것"이라며 "중국이 기회의 땅이라고 느꼈고, 사업할 생각을 굳혔다"고 말했다.

2000년 바둑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인 '위고'에 입사했다. 그때 아마추어 5단인 선배와 9점을 깔고 바둑을 배우기 시작해 8개월 만에 2점을 놓을 정도까지 실력이 늘었다. 이 회사는 곧바로 부도났다. 이어 2002년 게임과 바둑을 하는 타이젬에 입사해 2008년까지 타이젬중국사이트 지사장 등 중국 쪽 사업을 해왔다. 2007년에 친구의 소개로 한족과 결혼해 베이징에 신방을 꾸렸다.

중국에서 그는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기업에 투자했다가 어려움을 겪기도 했는데 구리의 도움으로 손해를 면할 수 있었다. 이세돌과의 인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국 바둑리그 구이저우(貴州)팀 소속으로 뛰던 이세돌이 전화를 해와 술자리를 가지면서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지난해 공동으로 출자해 베이징 왕징 지역에 이세돌 바둑교실 문을 열었다. 그는 "초반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관리자를 새로 채용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며 "앞으로 바둑열기가 일고 있는 지방에 바둑교실을 계속 세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끝으로 그에게 조정래의 소설 '정글만리'를 읽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옆에 있던 그의 선배가 "중국에서 음식점도 하고 여러 사업도 하며 말아먹기도 한 그의 인생이 정글만리 아닌가"라며 웃었다.

충칭=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