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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반달가슴곰 복원 프로젝트 10년

입력 | 2014-10-04 03:00:00

[야생동물 복원 프로젝트]쉿, 만복이 놀랄라!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인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이 15일로 10주년을 맞는다. 지리산에 방사된 새끼 반달가슴곰 2마리가 나무 위에서 놀고 있는 모습.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제공

‘설악산 마등령 계곡 밑에서 빈사상태로 발견된 반달(가슴)곰은 급히 달려간 구조대의 노력에도 보람 없이 숨을 거두고 말았다.’

1983년 5월 23일자 본보 사설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밀렵꾼이 쏜 총을 4발이나 맞고 달아나다 계곡 아래로 추락해 숨진 반달가슴곰의 죽음을 ‘가슴 아픈 일’이라며 안타까워하는 내용이다.

이후로 국내에서는 20년 가까이 반달가슴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과거 한반도 전역에서 서식하던 반달가슴곰이 남한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여겼다. 일제강점기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으로 수천 마리가 포획되고, 광복 후로도 쓸개를 탐낸 밀렵꾼들의 총 앞에 반달가슴곰이 쓰러져 나간 탓이다. 해수구제는 조선총독부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맹수를 없앤다는 이유로 호랑이 표범 등을 마구 잡아들인 것을 말한다.

31년 전 설악산의 한 계곡 아래서 여섯 살 된 암곰이 얕은 숨을 몰아쉬다 끝내 눈을 감은 이후 한동안 모습을 감췄던 반달가슴곰.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정한 멸종위기종 1급인 이 곰이 지리산에서 복원되고 있다. 2000년과 2002년 지리산에서 야생 반달가슴곰이 한 차례씩 카메라에 잡혔고, 더 늦기 전에 반달가슴곰 되살리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복원사업이 시작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종(種)복원기술원은 토종 반달가슴곰과 유전자형이 같은 개체를 러시아 연해주, 중국 동북부 지역, 북한에서 들여와 지리산에 방사하고 있다. 15일이면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이 시작된 지 꼭 10년이 된다. 기술원이 연해주에서 들여와 2004년 10월 15일 지리산에 처음 내보낸 6마리 중 암컷 ‘화엄’이와 수컷 ‘만복’이는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복원사업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 마리는 폐사하고 나머지 세 마리는 야생 적응에 실패해 기술원이 관리하고 있다.

2006년 멸종위기야생생물 복원 종합계획이 마련되면서 역시 멸종위기종 1급인 산양과 여우도 복원이 진행 중이다. 반달가슴곰과 여우는 2020년까지 자체 생존이 가능한 수준인 50마리로 늘리는 것이 목표다.   

▼ 여우 같은 곰… 드럼통 속 먹이만 날름 빼먹고 줄행랑 ▼

지리산엔 반달가슴곰… 설악산엔 산양


종복원기술원 직원들이 반달가슴곰을 지리산에 방사하는 모습. 반달가슴곰은 도토리 머루 다래 등 먹이가 많은 9, 10월경에 주로 방사한다(위쪽 사진). 설악산의 산양이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새끼 산양은 태어난 지 한 달쯤 지나면 젖을 떼고 1년 뒤면 어미 품을 떠난다. 종복원기술원 제공

“곰을 풀겠다고?”

“주민들이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았죠.”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의 한상훈 연구관은 “반달가슴곰을 복원하는 것에 대해 지리산 인근 마을 주민들은 썩 내켜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연구관은 복원사업 초기 국립공원관리공단 반달가슴곰팀장을 맡고 있었다.

지리산에 접해 있는 경남 하동·산청군과 전남 구례군 주민들은 반달가슴곰 복원에 반대하는 반상회를 열기도 했다. 농사짓는 땅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 멧돼지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곰이라니…. 주민들이 듣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게다가 주민들은 앞발을 손처럼 쓰는 곰과 산속에서 마주치면 멧돼지보다 훨씬 더 위험할 것이라고 여겼다.

주민들은 마뜩잖아 했지만 반달가슴곰 복원은 시작됐다. 그리고 주민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종복원기술원(기술원)이 반달가슴곰을 방사하는 지역은 해발 1000m 위쪽으로 지리산 국립공원 구역 안이다. 지리산은 700m 등고선을 기준으로 위쪽이 공원구역이다. 하지만 사람이 그어 놓은 이런 기준선을 곰은 알 리가 없었다.

반달가슴곰은 공원구역을 벗어나기도 했다. 산 아래 지역까지 내려가 벌통을 헤집어 놓는 사고를 쳤다. 지리산에는 토종꿀을 생산하는 한봉 농가가 4000곳이 넘는다. 곰은 꿀을 좋아한다. 복원이 시작된 이듬해인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반달가슴곰에 의한 한봉, 양봉 농가 피해는 318건(한봉 270건). 농작물과 기물, 가축 등을 포함한 전체 피해(359건)의 89%나 됐다.



초코파이의 유혹

복원사업 초기 지리산에 방사된 곰들은 각자 이름이 있었다. 수컷에게는 주로 지리산 봉우리 이름이, 암컷에게는 계곡 이름이 붙여졌다. 지리산 인근의 사찰 이름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곰들은 얼마 못가 이름을 빼앗겼다. 지리산 탐방객들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닌 대가다.

탐방객들은 새끼 곰들과 마주치면 귀엽다며 이름을 불렀다. 초코파이와 과자를 던져주기도 했다. 복원사업 초기 지리산에는 한두 살 된 어린 곰이 대부분이었다. 방사된 곰에 의한 인명사고 피해를 우려해 태어난 지 1년이 안 된 새끼 곰들만 풀었다. 주민들이 복원사업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상황에서 곰이 사람을 해치는 일이라도 벌어지면 복원은 물 건너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탐방객들이 애완동물 대하듯 하자 야생에 적응해야 할 곰들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탐방객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먹이가 떨어지기만 기다린 것. 겨울이면 동면굴을 찾는 대신 산속의 농가 지붕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곰도 있었다. 기술원은 이런 상황이 야생 곰 복원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했다. 2006년부터는 더이상 곰들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름을 갖고 있던 곰들도 이름 대신 고유 번호로 불렀다. 이때부터 화엄이에게는 RF-05, 만복이에게는 RM-02라는 관리번호가 붙었다. R는 러시아를, F는 암컷, M은 수컷을 뜻한다.

기술원의 이배근 복원기술부장은 탐방객들이 던져 주는 빵과 김밥을 받아먹고 살다 야생성을 잃은 ‘천왕’이를 산 아래로 끌고 내려올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먹을 걸 던져주면 따라 내려왔다. 산 아래로 데리고 올 때까지 김밥 10줄을 던져줬다. 평소에 단 음식을 얼마나 받아먹었는지 이빨의 반 이상이 썩어 있더라. 그때 천왕이는 야생 곰이 아니라 집에서 키우는 개나 마찬가지였다.”

회수 조치된 천왕이는 지금 기술원 내 생태학습장에서 지내고 있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신세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미련 곰탱이?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있는 반달가슴곰. 반달가슴곰은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발톱을 이용한 나무타기 실력이 뛰어나다.

‘곰 가재 잡듯’ ‘곰 창날 받듯’ ‘곰 설거지하듯’.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곰’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속담을 찾으면 곰의 행동을 빗댄 것이 대부분이다. ‘곰 가재 잡듯’은 둔한 움직임을, ‘곰 창날 받듯’은 사람됨이 우둔하고 미련해 스스로 자신을 해치는 행위를 빗댄 표현이다. ‘곰 설거지하듯 한다’는 건 아무리 일을 해도 별 보람이 없는 경우를 비유한 말이다.

정말 곰이 미련할까?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 얘기는 그렇지 않다. 양두하 국립공원관리공단 생태복원부 과장은 “곰의 지능지수(IQ)가 80쯤 된다는 얘기가 있다”며 “반달가슴곰을 보면 실제 그 정도는 되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다. 국내 곰 박사 1호인 양 과장은 2005년부터 6년간 반달가슴곰 복원 현장에서 일했다.

기술원은 위치추적용 발신기를 부착하거나 야생 적응에 실패한 개체를 회수하기 위해 생포 장치를 설치할 때가 있다. 눕혀 놓은 드럼통 안에 반달가슴곰이 좋아하는 포도주나 꿀을 담은 그릇을 넣어두고 유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뒷발은 바깥에 걸친 채 상체만 드럼통 안으로 넣어 유인용 먹이를 날름 빼내가는 곰이 있었다. 몸 전체를 넣으면 갇힌다는 걸 곰이 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기술원은 유인용 먹이를 더 깊숙한 곳에 두기 위해 드럼통 길이를 2배 이상 길게 만들어야 했다. 드럼통 입구의 차단용 문을 미리 망가뜨려 놓고 들어가 안전하게 먹이를 챙기는 곰도 있었다.

반달가슴곰은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을 때 달아나야 할지,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어도 괜찮은지를 알 만큼 눈치도 빠르다고 한다. 꿀통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곰을 본 집주인이 고함을 아무리 질러도 물러서지 않던 곰이 생포 장비를 갖춘 기술원 직원들이 나타나자 꽁무니를 뺀 적이 있다. 서너 달 가까이 겨울잠을 자야 하는 자신의 동면굴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로 굴속에 들어갈 만큼 머리 좋은 곰도 있었다. 굴속에 있다 밖으로 나간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위장술이다.

‘미련 곰탱이’라고 할 때의 그 ‘탱이’와는 관련이 없지만 탱이는 곰이 겨울잠을 자는 곳 중 하나다. 탱이는 나뭇가지나 식물의 잎, 줄기 등을 모아 큰 새둥지 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반달가슴곰이 바위굴 다음으로 좋아하는 동면 자리다.



“산양이 멸종위기종이었어?”

‘멧돼지보다 많은 걸 왜 복원한다는 거야?’

산양을 복원한다고 했을 때 설악산 인근 마을 주민들의 반응이 이랬다. 멧돼지보다 많다는 주민들의 얘기는 과장됐지만 산양은 전국적으로 800∼900마리가 있다. 반달가슴곰이나 여우에 비하면 훨씬 많은 수다. 하지만 곰이나 여우에 비해 많다는 것이지 보존 노력 없이 이대로 두면 멸종위기에 놓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설악산 인근 사찰의 주지 스님이 “절 입구에 산양이 왔다 갔다 하니 와서 데려가라”는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전화를 받은 기술원 북부복원센터 직원은 “산양은 바위가 많고 높은 산악지대에서 살고 경계심이 많은 동물이라 산 아래로는 웬만해서 내려오지 않는다”며 “혹시 염소를 잘못 본 건 아닌지 한 번 확인해 달라”고 스님에게 부탁했다. “내가 산양하고 염소도 분간 못 하는 줄 아느냐”며 스님은 호통을 쳤다고 한다. 서둘러 달려간 직원이 눈앞에서 확인한 건 염소였다. 이런 스님 같은 분들은 산양이 실제보다 훨씬 더 많다고 느낄 수도 있다.

산양은 멀리서 얼핏 보면 염소와 비슷해 보인다. 어스름할 때는 염소를 보고서 산양을 봤다고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북부복원센터의 산양 박사 조재운 팀장은 지방의 한 고생대박물관에서 산양을 소개하는 코너에 염소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산양 800∼900마리가 있기는 하지만 강원과 경북 북부지역 위쪽으로만 몰려 있다. 비무장지대(DMZ)에 300마리, 설악산에 250마리, 강원 양구·화천에 150마리, 경북 울진·봉화지역에 100마리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많지 않은 개체가 특정 지역에 몰려 살면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 곰 같은 여우… ‘요물’ 누명 썼지만 약해빠진 ‘순둥이’ ▼

소백산엔 여우
주요 먹이인 쥐 사라지자
멸종위기… 사람 마주치면 열에 아홉은 도망가
햇볕 잘드는 얕은 구릉지 좋아해… 서식지 주변 무덤많아 ‘구미호’ 오명



9월 소백산에 방사된 새끼 자매 여우의 모습.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발목과 귀 윗부분이 새카만 것이 토종 여우의 특징이다. 뒤에 있는 여우 왼쪽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구멍은 다른 여우가 파놓은 굴이다. 종복원기술원 제공

산양 복원은 반달가슴곰이나 여우처럼 외국에서 개체를 들여오지 않는다. 강원 지역에 몰려 있는 산양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형태의 복원이다. 한겨울 설악산에서 폭설에 갇혀 굶주린 산양을 구조하면 이 중 일부를 월악산에 방사하는 식이다. 산양 복원을 맡은 북부복원센터는 2007년부터 3차례에 걸쳐 16마리의 산양을 월악산으로 옮겼다. 이후 개체들의 출산이 이어지면서 지금은 55마리가 월악산에 산다. 이런 식으로 산양 복원 지역을 소백산, 덕유산, 지리산까지 차츰 넓힐 계획이다. 권철환 종복원기술원장은 “산양 복원의 목적은 2030년까지 백두대간을 잇는 생태축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약삭빠른 여우? 약해 빠진 여우!

여우 복원은 기술원이 서울대공원으로부터 기증받은 암수 한 쌍을 2012년 10월 소백산에 방사하면서 시작됐다. 여우 복원 지역이 소백산인 이유는 쥐 때문이다. 기술원은 여우 복원을 시작하기 전 1년간 백두대간을 따라 여우 먹이원 밀도를 조사했다. 그중 쥐가 가장 많은 지역이 소백산이었다. 잡식성인 여우는 식물의 열매, 메뚜기, 개구리 같은 것도 잘 먹지만 주식은 쥐다.

쥐는 국내에서 여우가 멸종위기를 맞은 이유와도 관련이 있다. 제주도와 울릉도를 제외한 국내 전역에 서식하던 토종 붉은여우는 1960, 70년대 쥐잡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지면서 개체수가 급감했다. 먹잇감인 쥐가 크게 줄면서 여우도 덩달아 감소한 것이다.

쥐약을 먹고 산에 들에 나뒹구는 쥐를 멋모르고 먹었다가 2차 피해로 눈을 감은 여우도 부지기수다. 2004년 3월 강원 양구에서 여우 사체가 발견되기는 했지만 이후 복원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국내에서 여우 서식지가 확인된 적은 없다.

소백산에 여우를 복원하겠다고 했을 때 인근 주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소백산과 접해 있는 경북 영주시와 봉화군 주민들은 하필 왜 여우냐는 반응이었다. 여우 복원을 맡고 있는 기술원 중부복원센터의 정철운 센터장은 “교활하고 약삭빠른 이미지에다 사람까지 홀린다는 요물을 왜 복원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

하지만 여우는 다 자라도 무게가 5, 6kg밖에 되지 않는 작고 약한 동물이다. 정 센터장은 “여우가 먼저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산속에서 사람과 마주친 여우 열 중 아홉은 뒷걸음질치다가 먼저 달아날 만큼 아주 겁이 많고 소심한 동물”이라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여우에게 간사한 요물 이미지가 따라붙은 이유를 두 가지로 짐작했다. 우선 여우의 서식지가 주로 무덤 주변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여우는 주로 해가 진 뒤에 돌아다닌다. 어두컴컴한 밤에 무덤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좋게 비쳤을 리 없다는 얘기다. 여우는 새끼를 낳기 위해 무덤에 굴을 파기도 한다.

여우가 무덤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여우는 햇볕이 잘 들고 시야가 탁 트인 야트막한 구릉지를 좋아한다. 이런 곳에 무덤이 많다. 정 센터장은 “1970, 80년대 인기가 많았던 TV드라마 ‘전설의 고향’에 나온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 구미호도 여우가 요망스러운 동물로 비치는 데 꽤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반대했던 주민들, 지금은…

지리산 인근의 하동군 화개면 의신마을에서는 올해 안에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이 문을 연다. 이 마을은 산림청이 산촌 생태마을로 지정한 곳인데 주민들이 생태마을을 구성하는 핵심 콘텐츠로 반달가슴곰을 택했다. 반달가슴곰을 생태관광 자원으로 활용해 마을 수익으로 연결하겠다는 생각이다. 2013년 12월 생태학습장을 완공했고 지난달 24일에는 기술원과 반달가슴곰 양도양수 협약까지 마쳤다. 기술원의 반달가슴곰 2마리가 곧 이 마을로 온다.

구례농협은 반달가슴곰을 브랜드로 한 쌀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구례군은 또 국내 첫 여성 씨름팀을 창단하면서 팀 이름을 반달곰씨름단으로 지었다. 반달가슴곰은 이제 지리산 ‘깃대종(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생물)’이 됐다. 소백산 인근의 영주시도 여우를 캐릭터로 한 상품 개발을 시작했다.

의신 생태마을 법인 정봉선 사무국장은 “산에 나물 캐러 갔다가 곰을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겁이 나고 하니까 처음에는 복원에 반대하는 분이 꽤 있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기술원이 주민 피해 방지와 보상에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기술원은 한봉 농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꿀통 주변에 전기 펜스를 설치했다. 복원사업 초기 한 해 50∼100건씩이던 꿀통 피해가 최근 3년 사이에는 10건 안팎으로 줄었다. 반달가슴곰에 의한 피해 보상을 위해 10년간 보험료로만 10억 원이 넘는 돈을 썼다.

기술원 관계자들이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멸종위기종 복원을 시작해 지금까지 몇 마리나 늘었느냐’는 것. 반달가슴곰은 10년간 모두 38마리를 들여왔다. 새끼 23마리가 태어났다. 9마리는 자연사했고 17마리는 올무나 농약 사고 등으로 폐사해 지금은 모두 44마리다. 이 중 31마리가 지리산에서 야생 상태로 살고 있다. 나머지는 기술원이 야생적응훈련장이나 증식시설에서 돌보고 있다.

여우는 지난달 15일 중국 동북부지역에서 들여온 여우 9마리를 방사한 것을 포함해 지금까지 3번에 걸쳐 모두 17마리를 풀었다. 이 중 네 마리는 죽었다. 한 마리는 덫에 다리가 잘려 회수됐다. 소백산에는 지금 12마리의 여우가 산다.

구례농협이 판매하는 반달가슴곰을 브랜드로 한 쌀. 이 쌀의 판매 수익 중 일부는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에 쓰인다.

‘그러면 돈은 얼마나 썼느냐’는 질문이 빠지지 않고 뒤따른다. 반달가슴곰 복원에 10년간 약 140억 원, 여우는 3년간 10억 원, 산양은 8년간 22억 원의 예산이 쓰였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십중팔구는 “헛돈 썼네…” 하고 결론을 낸다. 답답한 소리다.

“사람들이 해를 끼치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돈 들여가면서 복원할 일도 없었겠죠.” 기술원의 정동혁 야생동물의료센터장은 “가만히 뒀으면 다들 잘 살았을 애들인데…”라고 했다.

반달가슴곰은 자연 상태에서 1년 이상 생존율이 원래 40% 정도밖에 안된다. 게다가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인근 지역 주민이나 탐방객의 피해를 우려해 생후 1년이 안된 새끼 곰들만 골라 어미 없이 방사했기 때문에 생존율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우는 1년 이상 생존율이 20% 정도다.

이배근 복원기술부장은 돈을 들여서라도 멸종위기종을 복원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헛개나무 열매 종자는 발아율이 떨어지지만 곰의 배설과정을 거쳐 나오면 발아율이 높아진다. 우리가 건강한 숲으로부터 여러 가지 생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건 ‘숲 속의 농부’ 역할을 하는 이런 동물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리·소백·설악산=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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