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조선호텔 10일 ‘개관 100주년’… 한국인에게 호텔이란?
1940 년대 반도호텔(현 롯데호텔)의 모습. 조선호텔에 묵으려다 문전박대당한 일본 신흥재벌 노구치 시타가우(野口遵)가 당시 4층짜리 조선호텔보다 높게 8층으로 세운 것이다. 이 재벌은 5층에 집무실을 두고 조선호텔을 자주 바라봤다고 전해진다. 롯데호텔 제공
1914년 10월 처음 개관할 당시의 조선호텔 전경. 서울 중구 소공동 일대의 특급호텔로 들어선 조선호텔은 원래 4층 규모의 붉은 벽돌 건물이었다. 귀빈실인 201호는 광복 직후 이승만 전 대통령과 서재필 박사가 체류하기도 했다. 조선호텔 제공
1930년, 작업복 차림의 한 일본인이 경성의 ‘특급호텔’인 조선호텔에 들어갔다 쫓겨났다. 옷차림이 남루하다는 게 문전박대의 이유였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호텔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조선호텔을 내려다보는, 더 높은 호텔을 지을 테다.”
이 일본인은 1927년 함경남도 흥남에서 질소비료공장을 운영해 큰돈을 번 노구치 시타가우(野口遵)라는 신흥재벌이었다. 그가 문전박대에 한을 품고 조선호텔 바로 옆에 지은 것이 바로 현 롯데호텔의 전신인 반도호텔이었다. 노구치는 1938년 당시 4층짜리 조선호텔보다 높은 8층의 웅장한 건물을 세워 한을 풀었다고 한다. 이 일화는 당시 호텔의 위상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의 호텔은 최상류층이나 외국인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1960년대에는 경제개발계획의 상징이면서 달러 획득을 위한 무대였고, 1970년대에는 상당수 호텔이 민영화되면서 국내 주요 재벌그룹의 각축장이 됐다. 아시아경기와 올림픽이 연달아 열린 1980년대에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한강의 기적’을 홍보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신세대인 ‘X세대’의 놀이터로 변신했고, 방한 관광객이 1000만 명을 넘어선 최근에는 ‘한국 관광산업의 꽃’으로 떠올랐다.
내국인은 못 마시던 와인이 있던 곳
한국 최초의 서구식 호텔은 1888년 일본인이 인천 중구에 지은 ‘대불호텔’로 알려져 있다. 대불호텔은 우리나라 최초로 커피를 판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후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1912년 부산 철도호텔을 시작으로 1914년 조선호텔과 신의주 철도호텔을 잇달아 지으며 ‘부유한 특수계층’을 위한 관광 산업이 시작됐다.
광복 직후 조선호텔은 미군정 주요 인물들의 거처로 탈바꿈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귀빈실이었던 201호에 묵은 최초의 한국인이었다. 201호의 그 다음 주인은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 박사였다.
1948년 정부수립 후 호텔의 주인은 대한민국 정부로 바뀌었다. 서기관급 공무원이 호텔 총지배인이 됐다. 1961년 교통부 공무원으로 입사한 최훈 ‘와인리뷰’ 발행인(78)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면서 호텔 건설 등 관광산업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다”며 “관광산업은 수출할 상품이 없는 개발도상국이 빨리 외화벌이를 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였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내국인이 와인을 마시는 건 외화 낭비라는 이유로 불법이었어요. 업무상 외국인과 동행해 호텔 총지배인의 사인을 받아야만 와인을 조금 마실 수 있었습니다.”
1970년대 들어 정부는 보유 호텔들을 재벌에 매각하기 시작했다. 호텔 민영화가 관광산업 발전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해서다. 박 전 대통령은 1973년 롯데그룹에 반도호텔 매입을 권유했다. 같은 해 워커힐은 SK그룹으로, 1959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지시로 건설한 영빈관은 삼성그룹으로 넘어가 신라호텔이 됐다.
당시 신격호 롯데 회장은 인근 삼일빌딩(31층)보다 높은 45층 높이로 반도호텔을 재건축하길 원했지만 허가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롯데호텔은 지금의 37층 높이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호텔은 독특하게도 1970년 한국관광공사와 아메리칸 에어라인이 합작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이때 옛 건물을 철거하고 다시 지은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조선호텔은 1995년 신세계그룹에 인수됐다.
1930년대 조선호텔의 프랑스 레스토랑 ‘팜코트’(현재 나인스게이트그릴)에서 커피를 즐기던 무용가 최승희(가운데). 햇볕이 드는 팜코트의 ‘썬룸’은 경성의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맛보던 곳이었다. 조선호텔 제공
1995년 대학생이던 박모 씨(40)는 속칭 ‘나이트 죽돌이’였다. 1990년대에는 중소형 호텔의 나이트들이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면서 자유분방한 X세대의 놀이터가 됐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사회가 변한 만큼 호텔도 확 변했다. 해외여행을 가본 젊은 고객도 늘어났고, 강남 지역에는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등 특급호텔들이 들어섰다. 현존하는 특급호텔 클럽 중 가장 오래된 그랜드하얏트서울의 ‘JJ마호니스’가 생긴 것도 이때다. 개장 때부터 JJ마호니스를 이끈 구유회 그랜드하얏트서울 식음료부장은 “1988년에 ‘핼러윈 테마파티’를 열었더니 ‘외국 귀신 명절을 왜 기념하느냐’는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그때의 단골 고객이 지금도 찾아온다. 결혼식을 JJ에서 하고 싶다는 고객도 있다”고 말했다.
밀레니엄서울힐튼의 ‘파라오’와 리츠칼튼의 ‘닉스 앤 녹스’도 JJ와 쌍벽을 이뤘다. 1995년 문을 연 파라오가 인기를 끌자 당시 전국 각지에 파라오와 비슷한 인테리어의 ‘짝퉁’ 노래방과 나이트가 생겨나기도 했다.
호텔 커피숍은 맞선 장소로 유명했다. ‘마담뚜’들이 호텔에 상주하며 맞선 대상을 물색했고, 종(鍾)이 딸랑거리는 이름표를 들고 상대방을 찾는 풍습도 있었다. 인터컨티넨탈호텔 관계자는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로비라운지는 풍수지리학적으로 좋다고 소문나 맞선을 가장 많이 보는 곳으로 꼽혀왔다”고 귀띔했다.
와인이 호텔을 통해 국내에 소개됐듯 호텔은 새로운 음식문화의 전파 장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조선호텔의 ‘나인스게이트그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으로 ‘스테이크의 정석’으로 통한다. 1924년 생긴 한국 최초의 프렌치 레스토랑 ‘팜코트’가 그 전신이다. 쉐라톤워커힐의 ‘피자힐’은 연인들의 필수 데이트 코스로 유명했다. 피자힐은 1963년 건축가 김수근이 파격적인 역피라미드 형태로 지은 한국 최초의 노출 콘크리트 양식 건물이다.
호텔, 무한경쟁 궤도에 오르다
예전과 비교해 최근 달라진 점은 연인들을 위한 패키지 상품이 부쩍 강화됐다는 것이다. 그랜드앰배서더서울호텔 관계자는 “예전에는 젊은이들이 호텔 객실 이용을 드러내기 꺼렸다. 하지만 요즘은 밸런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에 호텔 객실이 연인 패키지를 이용하는 청춘들로 만실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급 호텔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2005년에는 파크하얏트호텔, W호텔 등 ‘6성급’ 호텔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무궁화 개수로 호텔 등급을 매기는 현행 등급제도에서 ‘6성’은 공식 용어가 아니지만, 호텔들은 최고급 프리미엄 서비스를 내세우면서 이 용어를 쓰고 있다. 6성급 호텔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쉐라톤, 웨스틴 등을 운영하는 스타우드그룹은 2016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럭셔리 컬렉션 호텔 서울’을 세운다. 서울 광화문 지역에서는 세계 최고급 호텔 브랜드인 포시즌스가 2015년 문을 열고, 서울 잠실의 제2롯데월드 고층부인 76∼101층에도 6성급 호텔이 들어선다.
2010년을 전후로 외국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호텔은 관광산업의 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숙소를 선호하는 관광객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노력으로 비즈니스호텔이 잇달아 문을 열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기존의 특1급 호텔들도 세컨드 브랜드로 신라스테이(신라호텔), 롯데시티호텔(롯데호텔), 나인트리호텔(파르나스호텔) 등 비즈니스호텔을 선보였다.
대형 국제행사를 유치할 수 있는 컨벤션센터에 투자해 마이스(MICE) 산업 경쟁력을 강화한 특1급 호텔도 늘어나는 추세다. 마이스는 기업회의(Meeting)·포상관광(Incentive Travel)·국제회의(Convention)·전시회(Exhibition)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신조어다. 호텔 입장에서는 이 같은 국제 행사를 유치하면 객실과 식당 등 부대시설 매출도 오르는 등 큰 파급효과를 얻을 수 있다.
앞으로는 숙박과 식당, 컨벤션 시설 등으로 덩치가 커진 특1급 호텔과 숙박기능만을 강조하는 중저가 호텔로의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 있다. 성연성 한국관광호텔업협회 사무국장은 “2010년 이후 대형 특급 호텔과 숙박기능에 충실한 중저가 호텔로 업계 구도가 집중되고 있다”며 “어정쩡한 몸집을 갖고 있는 호텔들은 결국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최고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