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달구는 社內 ‘카더라 통신’
직장내 '카더라 통신' 들어보니
○ “우리는 가족”이라더니
박 씨가 취직한 뒤 회사 선배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우리는 가족이다”였다. 직장 상사들은 ‘가족’이란 단어를 강조하면서 박 씨의 연애사와 성격, 가족관계 등 사생활과 관련한 질문을 꼬치꼬치 물었다. 박 씨는 “가족끼리 비밀이 어디 있나”라는 상사들의 말을 거스르기 어려웠다.
‘뒷담화’가 직장마다 일종의 문화처럼 자리 잡고 있다. 술자리에서 오갔던 이야기들은 사내 메신저와 엘리베이터 출퇴근길 등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박 씨는 “등만 돌리면 내 얘기가 시작되는 게 느껴졌다”며 “자리에 없는 사람이 대화 주제가 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 “정 대리 이직한다며?”
5년차 직장인 정재익 대리(30)는 최근 “정 대리, A사로 이직한다는 것이 사실인가?”라는 팀장의 질문에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A사는 정 대리 직장의 경쟁사였고, 경력직 공개채용을 진행 중이었다.
정 대리는 이직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A사가 면접을 진행했던 날 직장 동료들의 단체 메시지창에서 이뤄진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연봉 및 복지수준이 더 나은 A사가 공채를 할 때마다 이직 혹은 스카우트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올해 A사 경력 공채의 피해자는 정 대리가 됐다.
○ 사내 정치, 사내 연애도 먹잇감
개인의 성격이나 행동(33.8%) 낙하산·라인 등 인맥(31.9%) 관련 이야기도 뒷담화의 주요 소재다. 상사가 회식 때 늘어놓았던 ‘왕년의 주량’ 자랑은 직원들 사이에서 ‘역사적 술주정 사건’이 돼 돌아다닌다. 누군가 승진을 위해 라인을 갈아탔다거나 조직원들의 알력다툼이 시작됐다는 등의 ‘회사 정치’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주제다. 은행원 고경주 씨(27·여)는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곳이 회사”라고 말했다.
사내 연애도 직장 내 뒷담화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다. 최근 실제 부부나 애인은 아니지만 직장에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가리켜 ‘오피스 와이프(Office Wife)’ ‘오피스 허즈번드(Office Husband)’라고 말하기도 한다. 연애 관련 뒷담화에는 결혼 유무가 상관없다.
○ 열외 없는 뒷담화
‘주말마다 클럽을 전전하는 바람둥이 박 대리’ ‘술자리마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며 남자 선배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최 사원’ 직장에서 온갖 ‘카더라’ 통신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고급 정보를 알고 있다는 우월적 심리 때문이다. 비밀을 알고 있다는 우월감이 소문을 확산시키는 동력이란 뜻이다. 비밀을 공유하는 인원끼리 나누는 동질감과 친밀감도 큰 이유다.
직장인 윤재권 씨(30)는 “자기는 뒷담화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란 오해가 뒷담화를 퍼뜨리는 가장 큰 이유 같다”고 말했다. 인정도, 의리도, 논리도 없는 뒷담화에 열외가 있을까.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