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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한기흥]석주명의 ‘도시처녀 나비’

입력 | 2014-10-06 03:00:00


봄처녀, 시골처녀, 도시처녀, 기생, 북방기생…. 젊은 여성들 얘기 같지만 모두 나비 이름들이다. 우리나라 나비 연구의 선구자였던 석주명이 전국의 산과 들에서 나풀거리는 나비들을 모양 색깔 크기 등 특징에 따라 분류해 붙인 이름이다. 유리창, 굴뚝, 지옥 등 나비의 곱고 평화로운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흥미로운 이름도 많다. 독일 전래 동요 ‘나비야’에 나오는 노랑나비, 흰나비 정도만 아는 데 그쳐선 안 될 것 같다.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에서부터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의 ‘나비효과’에 이르기까지 나비는 문화 예술은 물론이고 철학 과학의 영역에서도 다양한 영감의 원천이 돼 왔다. 색소 없이도 예쁜 색깔을 내는 나비 날개의 나노 구조를 응용해 독성 안료가 안 들어간 페인트를 만드는 연구와 나비 모양의 스파이 로봇 개발 등도 진행되고 있다. 패션, 디자인, 수영 등 생활 곳곳에서 나비는 눈에 띈다. TV 시사프로그램 출연자들이 나비넥타이를 매는 것도 이젠 낯설지 않다.

▷1908년 평양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석주명은 1926년 일본 가고시마고등농림학교 유학을 계기로 나비에 홀렸다. 논문 한 편을 쓰기 위해 16만여 마리의 나비를 분석했다. 모두 75만 마리의 나비를 직접 채집해 연구했다. 이를 통해 일본학자들이 다른 종으로 잘못 분류한 나비들이 실은 같은 종임을 밝혀내 한반도의 나비 종류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6·25전쟁 때 그는 서울 남산 국립과학관의 나비 표본을 지키기 위해 피란하지 않았다. 그러나 과학관이 폭격을 맞아 표본들은 허무하게 소실됐고, 그도 그 후 인민군으로 오인 받아 총에 맞아 숨졌다. 64년 전 오늘인 1950년 10월 6일, 42세 때였다. 제주도 서귀포엔 그가 나비와 제주도의 지리 방언 등을 연구했던 것을 기리는 ‘석주명 공원’이 지난여름 조성됐다. 서귀포시는 나비박물관과 기념관 건립도 추진할 계획이다. 가을 나비의 날갯짓을 보노라면 그의 영혼도 나비처럼 자유로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