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北실세 3인 전격방문]南北 165분 대화… 무슨 얘기 오갔나
일대일로 얘기 나누는 남북 고위급… 최룡해 파트너는? 4일 2014 인천 아시아경기 폐회식에 참석한 남북한 관계자들이 편안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 황병서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겸 당 비서,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류길재 통일부 장관. 대화상대가 없는 최룡해 비서는 문서를 읽고 있다. 이 문서는 김양건 부장이 현장에서 수행원에게 받아 황병서 국장에게 보고한 뒤 넘겨준 것이다. 인천=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남북관계 개선 문제에 적극적으로 매달린 건 북한이었다. 문제를 유발했던 측의 극적인 태도 변화는 오히려 ‘의도’가 깔린 게 아니냐는 부담감을 안겨줄 정도였다.
북한 대표단은 4일 인천의 식당 ‘영빈관’에서 열린 오찬 회담 내내 “남북이 자주 만나 대화를 통해 통 크게 풀어야 한다”며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 황병서, 정홍원 총리와 7분간 추가 면담
7분간의 비공개 면담에서 황병서는 정 총리에게 “(남북 간에) 소통을 좀 더 잘하고, 이번에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를 열어가자”고 말했다고 한다. “평화통일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말도 했다. 표현으로 볼 때 남북관계 전면적 개선,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열어둔 발언이었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까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재차 강조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작은 통로’ 발언에 대한 화답의 느낌까지 떠올리게 했다. 이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최고위 인사 3명을 한꺼번에 한국에 보내는 ‘형식적 파격’에 이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확실히 내비치는 ‘메시지의 파격’까지 보여준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 측의 태도로 볼 때 남북관계 청신호가 온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 북한, 회담 내내 “만나서 풀자”
북한 측은 오찬 회담에서 “만나서 얘기하면 (문제가) 풀리지 않겠느냐” “남북관계를 잘해보자”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고 한다. 한국 측도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고 해 남북 양측이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한다.
특히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는 8월 한국 정부가 제안한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10월 말∼11월 초에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남북 대화가)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다. 더 늦지 않게 하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양건은 한국 측이 “대화를 통해 남북 간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고 말하자, “내가 말하겠다”며 2차 남북 고위급 접촉 수용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주로 황병서와 김양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이날 오찬 회담이 시작되기 전 황병서는 “김정은 위원장님의 따뜻한 인사를 박근혜 대통령께 전한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관계 개선이 김정은의 뜻이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황병서를 보내 남북관계 개선이 김정은의 의지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모습이었다”고 설명했다.
○ 남북 최고위 당국자들 315분 함께 보내
남북 모두 이번 회담에서 민감한 현안 얘기는 전혀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 측은 5·24 조치, 금강산 관광 재개, 대북 전단 살포 중단 등 최근 대남 비난 요소로 사용한 주장을 꺼내놓지 않았다. 어려운 일은 다 뒤로 미뤘단 얘기이기도 하다.
정부는 북한의 태도 변화가 단순히 한국의 대화 노력에 호응하는 게 아니라 아시아경기대회를 활용해 자신들이 통 크게 대화를 제의하는 ‘북한식 프레임’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어려운 남북 대화는 이제 시작이다. 남북 간 현안을 풀기 위해 갈 길이 멀다”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 테이블에서 싸울 일만 남았다”고 비유했다.
남북 최고위 당국자들은 4일 하루에 165분간 대화했다. 차관급 간 남북 대화였던 올해 2월의 남북 고위급 대화를 제외하고 지난해 2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1년 10개월간 최고위급 대화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극적인 변화인 셈이다. 정 총리를 비롯해 남북 당국자들이 2시간 반 남짓 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을 같이 본 시간과 이동 시간까지 감안하면 남북 최고위급 당국자들이 최소 315분을 함께 보낸 것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