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최고실세 3인 황병서-최룡해-김양건 4일 南 전격 방문 金 신변이상설 잠재우고 남북대화 주도권 잡기 승부수 해빙 기대되지만 친서 없고 靑예방 불발, 신뢰쌓기 먼길
화기애애 12시간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 참석을 명분으로 방문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4일 인천의 한 식당에서 한국 측 인사들과 악수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의 중요한 계기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왼쪽부터 류길재 통일부 장관,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 김규현 안보실1차장, 홍용표 대통령통일비서관. 오른쪽 북한대표단은 오른쪽부터 최룡해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겸 노동당 비서,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윤삼철 수행비서. 인천=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의 실질적 2인자인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4일 전격적으로 남한을 찾았다. 최룡해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도 함께 왔다. 한 사람만 와도 최고위급 방문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군 실세, 민간 실세, 대남 총책 등 분야별 측근 3인방을 ‘패키지’로 보냈다. 북한 특유의 ‘깜짝쇼’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은 이날 오전 9시 52분부터 오후 9시 58분까지 12시간 6분간 남한에 머무르며 ‘달콤한 말’을 쏟아냈다. 황 총정치국장은 “이번에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를 열어가자”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작은 사업부터 시작해 남북 교류를 확대하자며 던진 ‘작은 통로론’을 절묘한 ‘레토릭(수사)’으로 활용한 셈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박 대통령을 향해 ‘대결에 미친 정치○○○’라며 막말을 퍼부었다. 하지만 김정은은 황 총정치국장을 통해 구두메시지로 ‘따뜻한 인사말’까지 전했다.
2차 남북 고위급 회담이 가시권에 접어들면서 얼어붙은 남북 관계는 다소 풀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쫓기는 쪽은 북한이다. 북한은 지난달 열린 유엔 총회에 15년 만에 이수용 외무상을 파견했다. 하지만 어느 국가도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북한은 중국 러시아마저 감싸주지 않는 상황에서 남북 관계의 진전 말고는 돌파구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거물 3인방’을 한꺼번에 내려 보낸 것도 충격요법으로 대화 주도권을 쥐겠다는 절박함의 표현으로 분석된다. 마침 4일은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10·4선언’이 발표된 날.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최적의 날을 고른 셈이다. 북한이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역도 세계신기록 우승 등 대회 7위를 차지한 ‘쾌거’도 분위기 고조에 한몫했다. 그러면서 온갖 신변이상설이 나돌았던 김정은의 건재도 과시했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즐겨 인용하는 ‘고르디우스의 매듭’(대담한 방법으로 난제를 푸는 일)처럼 남북 관계의 엉킨 실타래가 단박에 풀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북한 대남매체는 거물 3인방이 남한을 찾은 당일에도 박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기사를 실었다. 북한이 대화와 대결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의 친서도 따로 없었다. 거물 3인방과 박 대통령의 만남도 불발됐다. 상호 신뢰를 쌓기에 아직 갈 길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