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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선택제 일자리로 ‘달콤한 재취업’… “어젠 경단녀, 이젠 슈퍼맘”

입력 | 2014-10-07 03:00:00

[2014 리스타트-새 희망의 일터로]<1>시간선택 일자리 도전 엄마-아빠 3인 이야기
정부 지원 시간제 정규직 1만명 돌파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 잡았어요”… 본보-채널A 22, 23일 잡페어 개최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경력 단절 여성, 은퇴자 등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전 유명 제과점 ‘성심당’에서 하루 6시간씩 시간선택제로 일하고 있는 홍희선 씨(왼쪽)와 동료들이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며 웃고 있다. 대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처음에는 용어 자체가 낯설었죠. 그런데 하루 4시간만 근무하면 되고 전일제 직원들과 차별 없는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데 놀랐어요.”

IBK기업은행 황경숙 계장(44)은 지난해 9월 시간선택제 직원으로 8년여 만에 일터로 돌아왔다. 이 은행에 이렇게 채용돼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인원은 102명. 신한은행도 최근 시간선택제 직원 100명을 뽑기 위한 절차를 마쳤고 코레일은 1일부터 채용에 들어갔다. 롯데그룹은 고용노동부와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최근 체결했다.

정부가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정책으로 지난해 9월 전담팀까지 구성해 강력하게 추진해온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이 시행 1년여 만에 본격적으로 결실을 보고 있다.

정부는 이 제도를 도입한 기업에 1년간 인건비의 50%를 지원하고 있다. 6일 고용부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이 혜택을 받은 인원은 1만141명으로 지난해 전체(5738명)의 2배에 육박했다.

이들은 모두 기업과 무기계약 이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했으며 시간당 임금과 보너스 등의 처우가 정규직과 같다. 비정규직 파트타임, 흔히 말하는 ‘알바’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정부가 만든 채용 포털인 워크넷을 통해 올 상반기 채용된 전체 취업자 수에서 시간선택제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7.3%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6%포인트 증가했다. 전일제 정규직이 아니면 비정규직이란 이분법으로 나뉜 국내 고용시장에 새로운 고용 형태인 ‘시간선택제’가 자리를 잡아가는 셈이다. 정부는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더욱 확산될 수 있도록 이달 내로 후속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동아일보와 채널A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와 민간부문의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22일부터 이틀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14 리스타트 잡 페어-새 희망의 일터로’라는 박람회를 개최한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100여 개 대기업과 공기업, 정부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가 참가해 다양한 일자리 정보를 제공한다.  


▼ “낮 1시 퇴근해 아이와 함께… 월급 적지만 행복은 100배” ▼

2009년 셋째를 출산하면서 하루 4시간의 병원 파트타임 근무마저도 육아 때문에 그만둬야 했던 홍희선 씨(36). 올해 들어 5년 만에 새 일자리를 찾은 그는 아침 출근길이 가뿐하다. 오후 3시 반이면 퇴근해 어린이집에서 다섯 살 난 셋째 아들을 데려올 수 있어서다. 홍 씨는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확산이 가져온 작은 변화상 가운데 하나다. 꿈을 좇아 다시 일터를 찾고자 하는 경력 단절 여성들과 퇴직 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베이비붐 세대,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자 하는 청년들. 이들에게 시간을 골라 근무할 수 있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더없이 고마운 존재다. 개인의 자아실현, 나아진 가정경제는 물론이고 일자리 증가로 인해 침체된 한국 경제에도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 파트타임 알바에서 당당한 ‘셰프님’으로

홍 씨의 직장은 대전 유명 제과점 ‘성심당’을 운영하는 로쏘다. 이곳에서 하루 6시간씩 무스케이크 등에 올리는 장식을 만들고 있다. 직업박람회를 통해 어렵사리 구한 시간선택제 일자리였다. 예전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병원에서는 그를 잠시 일손만 돕다 가는 아르바이트로 여겼다. 하지만 성심당에서는 4대 보험 등 각종 직원 복지 혜택이 주어질 뿐만 아니라 사실상 정식 직원의 대우를 받는다.

“동료들이 저를 ‘셰프님’이라고 불러요. 정말로 회사 구성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얼마 전 생일 때에는 축하한다며 회사에서 상품권을 주었는데 가슴이 뭉클했어요.”

그의 한 달 급여는 세후로 약 90만 원. 교통비를 남기고 모두 적금을 붓는다. 가계를 꾸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남편의 월급으로 충당하고 있다. 자녀들을 키우는 데 소홀해질 수 있다며 홍 씨가 직장에 다니는 걸 언짢아했던 남편도 이제는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강원 춘천시에 사는 김희선 씨(47)는 지난달 25일 오후 3시경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가 아파서 함께 병원에 다녀왔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하루 4시간을 시간선택제로 일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김 씨는 2012년 5월부터 한국고용정보 해피콜센터에서 전화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전 보험설계사, 화장품 방문판매원 때는 아침 일찍 출근해 늦은 밤에야 귀가하는 일과가 이어졌다. 세 아이의 엄마 역할까지 소화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직장을 관뒀지만 전업주부의 삶은 무료했다. 쌍둥이 두 자녀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금전적인 부담도 커져 갔다.

재취업을 위해 찾은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알선받은 곳이 바로 지금의 직장이다. 김 씨가 매달 받는 실수령액은 약 75만 원. 전화 상담 건수에 따라 인센티브가 붙어 더 많이 받을 때도 있다. 일상도 달라졌다. 학부모 모임에도 나가고 막내를 학원에도 데려다준다. 최근에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한 강습도 받으러 다닌다. 김 씨는 “월급은 보험설계사 등을 할 때의 절반 정도지만 행복지수는 100배 이상 늘어난 것 같다”며 “지금의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 퇴직한 베이비붐 세대에도 양질의 일자리를

건설회사에서 정년퇴직하고 잠시 동종업계의 작은 회사에 몸을 담았던 배정천 씨(59). 결국 지난해 5월 그에게도 실업의 아픔은 찾아왔다. 지난해 말 매달 120만 원씩 나오던 실업수당이 끊길 무렵이 되자 초조함은 더해갔다.

배 씨는 “바리스타 교육도 받았지만 우리 세대를 채용하려는 곳은 많지 않았다”며 “그나마 갈 수 있는 곳은 육체적으로 힘들고 구직 경쟁도 심했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일자리를 알아본 끝에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의 소개를 받아 4월 서울 강남구 세곡동 강남구립행복요양병원에 입사했다. 주당 30시간을 일하는 시간선택제 근로자로, 병원을 찾는 환자나 가족들의 상담 업무를 맡고 있다. 월 화 목 금요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 30분까지 일한다.

‘일의 소중함’을 깨달은 덕에 그는 근무 시간을 20대 신입사원처럼 보낸다. 먼저 일을 찾고 누구보다 빨리 일을 처리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자신감을 찾았다는 것이다. 딸, 사위와 외식을 할 때면 먼저 지갑을 연다.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에요.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좀 더 늘어나 우리 같은 퇴직자들이 더 많이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특별취재팀

▽팀장
문권모 소비자경제부 차장
▽팀원 박창규 권기범 김성모(소비자경제부) 유성열(정책사회부) 장선희(사회부) 송충현 기자(경제부) 박형준 도쿄특파원(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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