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MBC ‘대왕의 길’에서 사도세자(임호·왼쪽)는 아버지의 미움을 받다 화병을 앓는 유약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올해 방영 중인 SBS ‘비밀의 문’에서 사도세자(이제훈)는 공평한 세상을 꿈꾸는 개혁군주로 나온다. 동아일보DB·SBS 제공
○ 불쌍한 아들 혹은 광인(狂人)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였다’는 극적인 이야기는 드라마와 영화의 인기 소재였다. 대왕의 길 이전에도 1988년 조선 영조시대를 그린 KBS ‘하늘아 하늘아’와 MBC ‘조선왕조500년-한중록 편’이 일일극으로 동시간대에 방영돼 화제를 모았다.
○ 당쟁의 희생양
사도세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작품은 이인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영원한 제국’(1994년)이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히려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작품인데, 사도세자가 노론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었음을 암시했다.
이후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사도세자의 고백’(1998년)이 인기를 끌면서 대중문화 속 사도세자의 이미지도 당쟁의 희생양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정조가 주인공인 MBC ‘이산’(2007년)과 올해 상반기 화제작이었던 영화 ‘역린’에서도 사도세자는 노론의 음모로 억울하게 죽는 것으로 그려진다.
정병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저서 ‘권력과 인간-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2012년)에서 사도세자가 당쟁에 희생됐다는 설이 인기를 끄는 요인에 대해 “독자의 감정에 영합한 데 있다고 본다”고 적었다. 그는 “독자는 사도세자가 (사실과 다르게도) 성군의 자질을 가지고도 불쌍하게 뒤주에 갇혀 죽은 것에 동정하고 공분한다. 그리고 그 진실이 집권세력에 의해 가려졌다는 통속소설적 논리에 감동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드라마들은 한발 더 나아가 사도세자를 개혁군주라는 능동적인 인물로 미화한다. SBS ‘무사 백동수’(2011년)는 사도세자가 북벌을 꿈꾸다 청나라와 결탁한 노론 세력에 암살당한 것으로 묘사했다. 비밀의 문에서도 사도세자는 신분의 귀천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면서 절대 왕권을 추구하는 아버지와 정치적으로 대립한다.
대중문화평론가인 이영미 성공회대 초빙교수는 “한국 사극은 궁중 인물 간 갈등에 초점을 맞춘 가족드라마에서 당대의 정치적 맥락을 강조한 정치드라마로 변화해왔다”며 “2000년대 이후 퓨전사극이 많아지면서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정치적 해석도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고 분석했다.
내년에는 사도세자가 주인공인 영화 ‘사도’도 나온다. 이준익 감독이 연출하고 사도세자 역은 유아인이, 영조 역은 송강호가 맡았다.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한 오승현 타이거픽쳐스 대표는 “영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당대 기록을 샅샅이 훑어 고증에 충실하되 영조와 사도세자, 아버지와 아들이 반목할 수밖에 없었던 심리와 감정묘사에 초점을 맞췄다”라고 밝혔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