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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롤… 아메리콕… 영어로 쓰면 더 맛있나

입력 | 2014-10-08 03:00:00

[말이 세상을 바꿉니다/9일 한글날]외식업체 메뉴 절반 이상이 외국어




외국어 사용을 넘어 최근에는 한글을 버리고 영문 표기로 메뉴판을 내놓은 곳도 있다.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베키아에누보’는 메뉴판에 제품 이름 및 설명을 영문으로 표기했다. 업체 측은 “브랜드 정체성을 고려해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하와이안 딜라이트’ ‘키스 오브 엔젤’ ‘렛츠 트위스트’….

백화점이나 대형 복합쇼핑몰에 입점해 있는 국내 대표 식음료 업체들의 제품 이름이다. 하와이안 딜라이트는 파인애플이 들어간 피자, 키스 오브 엔젤은 유명 생수를 사용한 커피, 렛츠 트위스트는 꽈배기 빵이다. 그러나 영어로 돼 있다 보니 무슨 제품인지, 어떤 맛인지 알기 어렵다.

○ 외국어 오남용 심각… 영문만 표기하는 업체도

7일 본보가 가맹점 수를 기준으로 제빵(파리바게뜨 파리크라상 뚜레쥬르), 음료(엔제리너스 이디야 카페베네), 햄버거(롯데리아 맥도날드), 피자(미스터피자 도미노피자 피자헛), 패밀리레스토랑(아웃백 빕스) 등 업계별 상위 2, 3곳을 선정해 총 13곳의 대표 메뉴(주력 제품) 758개의 제품명을 조사했다. 그 결과 전체의 63.4%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외국어가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커피’나 ‘치즈’ 등 외래어(사전에 등재된 단어)가 들어간 제품은 23.5%이며 우리말 이름(한자 포함)은 13.1%에 그쳤다.

문제가 되는 것은 외국어 제품명에서 나타난 오남용 사례다. 스위트밀크롤(파리바게뜨)이나 웨스턴그릴드시푸드플래터(아웃백) 등은 스위트(달콤한), 밀크(우유), 웨스턴(서양식), 시푸드(해산물) 등으로 바꿀 수 있는데 과도하게 외국어를 쓴 대표적인 사례다. 커피와 콜라를 섞었다는 아메리콕(카페베네) 같은 합성어나 ‘아침’이란 단어에 ‘모닝’이 더 붙은 아침엔햄에그모닝(파리바게뜨) 같은 군더더기 표현도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외국어 사용을 넘어 최근에는 ‘영문 메뉴판’을 내놓은 곳도 있다.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베키아에누보’는 메뉴판에 제품 이름 및 설명을 영문으로 표기해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도록 해놓았다. 업체 측은 “영문 표기가 브랜드 정체성에 더 맞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 외국어 메뉴 사전 등재 기준 체계화 검토

김문오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 학예연구관은 “외국어 제품명을 많이 쓰다 보면 사람들 간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게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어학자들은 ‘리얼치즈듬뿍브레드’는 ‘치즈가 듬뿍 들어간 빵’이란 식으로, 외국어 이름 중 상당수는 한국어로 바꿔 표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어 이름을 붙이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카페 브랜드 ‘코코브루니’는 감을 넣은 빙수를 ‘어찌감이’로, 딸기를 넣은 빙수를 ‘일편딸심’으로 내놔 주목받았다. 김주희 코코브루니 매니저는 “한국어 표현이 오히려 마케팅상 차별화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카페베네는 ‘카푸치노’를 ‘부드러운 우유 거품을 올린 가베’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소비자 대상의 한국어 이름 공모전을 9일부터 열기로 했다.

여준상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사회가 글로벌화되고 있고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맞춰 마케팅을 하다 보니 외국어 사용이 일반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드레싱’을 ‘맛깔장’, ‘샘플러’를 ‘맛보기 묶음’ 등 국립국어원의 한글 순화 운동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정도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는 “현실적으로 외국어를 더 많이 쓰는 단어는 외래어로 등재시켜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bsism@donga.com·김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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