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세상을 바꿉니다/9일 한글날]외식업체 메뉴 절반 이상이 외국어
외국어 사용을 넘어 최근에는 한글을 버리고 영문 표기로 메뉴판을 내놓은 곳도 있다.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베키아에누보’는 메뉴판에 제품 이름 및 설명을 영문으로 표기했다. 업체 측은 “브랜드 정체성을 고려해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백화점이나 대형 복합쇼핑몰에 입점해 있는 국내 대표 식음료 업체들의 제품 이름이다. 하와이안 딜라이트는 파인애플이 들어간 피자, 키스 오브 엔젤은 유명 생수를 사용한 커피, 렛츠 트위스트는 꽈배기 빵이다. 그러나 영어로 돼 있다 보니 무슨 제품인지, 어떤 맛인지 알기 어렵다.
○ 외국어 오남용 심각… 영문만 표기하는 업체도
문제가 되는 것은 외국어 제품명에서 나타난 오남용 사례다. 스위트밀크롤(파리바게뜨)이나 웨스턴그릴드시푸드플래터(아웃백) 등은 스위트(달콤한), 밀크(우유), 웨스턴(서양식), 시푸드(해산물) 등으로 바꿀 수 있는데 과도하게 외국어를 쓴 대표적인 사례다. 커피와 콜라를 섞었다는 아메리콕(카페베네) 같은 합성어나 ‘아침’이란 단어에 ‘모닝’이 더 붙은 아침엔햄에그모닝(파리바게뜨) 같은 군더더기 표현도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외국어 사용을 넘어 최근에는 ‘영문 메뉴판’을 내놓은 곳도 있다.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베키아에누보’는 메뉴판에 제품 이름 및 설명을 영문으로 표기해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도록 해놓았다. 업체 측은 “영문 표기가 브랜드 정체성에 더 맞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문오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 학예연구관은 “외국어 제품명을 많이 쓰다 보면 사람들 간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게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어학자들은 ‘리얼치즈듬뿍브레드’는 ‘치즈가 듬뿍 들어간 빵’이란 식으로, 외국어 이름 중 상당수는 한국어로 바꿔 표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여준상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사회가 글로벌화되고 있고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맞춰 마케팅을 하다 보니 외국어 사용이 일반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드레싱’을 ‘맛깔장’, ‘샘플러’를 ‘맛보기 묶음’ 등 국립국어원의 한글 순화 운동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정도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는 “현실적으로 외국어를 더 많이 쓰는 단어는 외래어로 등재시켜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bsism@donga.com·김성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