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에서 선 수출코리아] 美-日-EU 모두 ‘환율 전쟁’ 벌이는데 한국만 무대응 학계 “韓銀 구두개입만으론 한계”… 기재부와 손발 안맞는 것도 문제
“환율 추세는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손놓고 있지는 않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7일 국정감사에서 엔화 약세에 대한 정부의 대응 태세를 묻는 의원들에게 한 답변이다. 비록 이 총재가 환율에 대한 외환당국의 관심을 구두(口頭)로나마 시장에 확인시켜 줬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자세는 기존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날도 엔저 대책에 대한 의원들의 추궁에 한은이 마지못해 최소한의 성의만 보인 것이란 평가가 많았다.
한은은 지금까지 환율에 대해 “지켜보고 있다”,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을 뿐 구체적인 액션을 취하는 데는 부정적이었다. 또 원화의 상대적 강세를 막기 위해 금리를 낮추는 방안에 대해서도 “환율 변동을 금리로 풀다가는 부작용이 생긴다”며 신중론을 견지해왔다. 외환당국의 이런 수동적인 대응은 적극적으로 시장 개입을 했다가는 자칫 국제사회에서 ‘환율 조작국’으로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우려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손발이 유난히 맞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기획재정부는 엔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압박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한은의 반발만 사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환율에 대한 당국자의 발언 수위가 제각각이고 관련 대책이 매번 지엽적인 수준에 그치는 것도 이 같은 부처 간 ‘샅바 싸움’ 탓이 크다.
한국과 달리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정부 부처와 중앙은행이 환율이나 통화정책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시장에 혼선을 주는 일은 별로 없다. 경제부처의 한 관계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엔저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결국 뾰족한 엔저 대책이 없다는 방증”이라며 “한은의 ‘협조’ 없이는 별다른 정책수단도 없어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