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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의 히트&런]LG 신의 한 수 ‘양상문 3년6개월 계약’

입력 | 2014-10-09 03:00:00


LG 팬들에게 양상문 감독(사진)은 구세주로 통한다. 5월 13일 양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LG의 성적은 10승 1무 23패(승률 0.303)로 순위는 꼴찌였다. LG 관계자들은 “올해는 최하위만 면해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요즘 LG는 정규리그 최종 4위에 가장 근접해 있다. LG는 아시아경기 휴식기 후 치른 1∼3위 팀과의 경기에서 4승 1패로 선전했다. 5경기를 남겨둔 8일 현재 60승 2무 61패(승률 0.496)로 5위 SK에 1.5경기 차로 앞서 있어 2년 연속 가을잔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남은 시즌을 잘 마무리해 ‘꼴찌를 4등으로’ 이끈다면 양 감독은 천하의 명장 소리를 들을 만하다.

최악의 상황에서 구원 등판해 팀을 살려놓은 양 감독의 지도력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LG가 고심 끝에 내놓은 3년 6개월 계약도 ‘신의 한 수’로 지금의 LG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성적 부진 등의 이유로 시즌 중반 감독을 바꿀 때 대부분 팀들은 ‘감독대행’을 임명한다. ‘대행’이라는 딱지는 거추장스러울 뿐 아니라 무겁기도 하다. 남은 시즌 성적에 따라 정식 감독이 될 수도 있고, 경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단은 안전장치라고 생각하겠지만 대행은 초조하다. 선수들은 귀신같이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한다. 지난해까지 시즌 중반 감독대행을 맡아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것은 2004년 유남호 KIA 감독대행이 유일했다.

LG는 양 감독에게 3년 6개월의 계약기간을 보장했다. 이 중 올해에 해당하는 6개월은 보너스의 성격이 짙다. LG는 양 감독에게 “당장의 성적보다 장기적으로 강한 팀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양 감독으로선 잘하면 좋겠지만 안 되도 그리 큰 책임을 질 이유가 없었다.

양 감독은 성적에 대한 부담 없이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자신의 야구를 맘껏 펼칠 수 있었다. 급할 게 없으니 무리한 선수 기용을 할 이유도, 선수들을 심하게 다그칠 필요도 없었다. 사령탑의 여유는 선수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양 감독은 취임식 인터뷰에서 “높이 보지 않고 한 계단씩 올라가겠다”고 했다. 4강이 보일 때도 “하던 대로 하겠다. 괜한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고 했다. 잃을 게 많았던 두산과 롯데, SK가 매일 승부에 일희일비하며 제 풀에 무너지는 동안 LG는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갔다. LG의 한 선수는 “경기 중 감독, 코치의 표정 변화나 말 한마디 같은 사소한 것들에 선수단 분위기가 크게 좌우되곤 한다. 감독님 부임 후엔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했다.

시즌 초반 김기태 전 감독은 팀을 떠나면서 “내가 지휘봉을 놓는 것을 계기로 선수단이 똘똘 뭉쳐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의례적으로 들렸던 이 말이 정말 현실이 돼 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실력보다 중요한 평정심이 자리하고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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