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수 논설위원
“실장: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회장: 음 좋아 짜릿하군. 전기요금부터 올려 본전을 뽑아야겠어. 실장: 네? 전기료라뇨? 회장: 한전도 인수한 거 아냐?”
이런 얘기도 나왔다. “10조5500억 원으로 할 수 있는 것들.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10조8000억 원)을 모두 산다, 자동차 회사를 사모아 글로벌 3위가 된다(재규어와 랜드로버 2조3000억 원, 볼보 2조 원)….”
정 회장의 ‘통 큰 베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다. 그러나 결정 과정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현대차는 정 회장만이 아니라 모든 주주의 회사이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정부에 내는 것이라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고 하자 ‘회사와 주주에 손해를 끼쳤다’는 비판이 나왔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이사회 의사록을 받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현대차는 이사회를 열었으나 이사들은 모든 결정을 정 회장에게 위임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사회가 아닌 총수 일가의 독단으로 이루어졌다”고 의심하면서도 법적 요건 부족으로 소송은 안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에 낸 것이라’ 시민단체도 봐준 걸까.
한국 대기업들은 한때 총수의 강력한 리더십이 성공 비결로 칭송 받았다. 단기 수익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 성장 가능성에 투자하는 안목, 총수 중심의 과감하고 빠른 의사결정은 미국 하버드비즈니스스쿨에서 연구할 정도였다. 정 회장의 ‘통 큰 결정’도 나중에 이런 사례가 될 수 있을까.
그러나 햇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이다. 회사 돈과 개인 돈을 구별하지 않는 불투명성, 잘못된 판단을 해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황제경영’이 대표적인 문제로 꼽혔다. 최근 SK 효성 CJ 회장들이 법적 처벌을 받거나 재판 중인 것도 이와 연관된다.
한국 대기업들은 고도성장의 주역으로서 지금까지 잘해 왔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나라 전체에 위기감이 돌고 있다. 수출 대기업 위주였던 한국 경제가 패러다임 시프트에 놓인 것처럼 한국 대기업들도 전환기를 맞았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가족경영은 머잖아 3, 4대로 넘어갈 것이다. 1, 2대 때 통하던 경영 방식이 미래에도 통할지 알 수 없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 같은 미국 창업자들에 이어 알리바바의 마윈 같은 창의적이고 패기만만한 중국 창업자들이 세계무대에 등장했다. 중국은 대규모 국유 기업의 엘리트 경영자들도 뛴다. 기업 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없다. 분명한 사실은 시장이 승자와 패자를 가려낸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3, 4세 경영자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스스로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