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프리즘
―이경희(1935∼)
댓돌에 내려서는 상긋한 가을
아침볕을 따라 돌아서는 해맑은 풀꽃의 얼굴
뽀얗게 건조한
마당의 씨멘트 색깔에서
풀 먹인 치마폭이
파릇이 살아나는 탄력에서
어머님의 손매디가
성큼하게 돋아나는 아픔에서
다홍고추를 다듬는
재채기 소리에서
깡마른 호박넝쿨 위에
길게 늘어진 추녀 그림자에서
머리 빗으니
무심히 날리는 한 가닥의 새치에서
가슴 속
살비듬이 돋아나는 서걱임에서
장지문에 비껴드는
아침 빛줄기를 타고 오는 가을
이 아침
님의 손은 한결 가슬거린다
―이경희(1935∼)
댓돌에 내려서는 상긋한 가을
아침볕을 따라 돌아서는 해맑은 풀꽃의 얼굴
뽀얗게 건조한
마당의 씨멘트 색깔에서
파릇이 살아나는 탄력에서
어머님의 손매디가
성큼하게 돋아나는 아픔에서
다홍고추를 다듬는
재채기 소리에서
깡마른 호박넝쿨 위에
길게 늘어진 추녀 그림자에서
머리 빗으니
무심히 날리는 한 가닥의 새치에서
살비듬이 돋아나는 서걱임에서
장지문에 비껴드는
아침 빛줄기를 타고 오는 가을
이 아침
님의 손은 한결 가슬거린다
시집만큼이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다. 정갈하고 조금은 쓸쓸한 모녀의 삶이 장지문에 비껴드는 가을 아침 햇살처럼 맑고 소슬하게 그려져 있다. 댓돌이 유난히 상긋해 보이고, ‘풀 먹인 치마폭’이 문득 빳빳하게 종아리를 스친다. 아, 가을인가. ‘다홍고추를 다듬는’ 어머니의 손마디가 더 울룩불룩해진 듯해 가슴이 아프다. 무심히 머리를 빗는데, 거울 속에 비치는 한 가닥 새치. 언제 생겼지…. 집 안에도 마당에도 화자의 가슴속에도 가을의 빛이 아른아른 남실거린다. 가슬가슬한 가을의 빛이! 이처럼 얌전하고 사뿐한 맵시에 열정을 더한 시인의 다른 시 ‘분수VI’ 앞부분만 소개한다. ‘내 당신 속에 들고/당신 또한 내 속에 들었음에도/이상하여라/허공을 헤집는/손, 손, 손,//허공의 손들을 끌어내리려/발꿈치는 늘 꿈꾸듯 매달려 있네’ 숨죽인 가운데, 몽환적이고 감각적인 발레를 보는 듯하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