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대통령앞 애로 호소한 농민… 허가 요청지 포기하고 옮겨짓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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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자 A5면 보도.
회의가 열린 지 한 달이 지난 이달 초 이 씨를 찾았다. 이 씨는 원래 한과공장을 세우려던 자기 집에서 7km 정도 떨어진 곳에 공장을 열기로 하고 건물 임대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회의 직후부터 여러 부처에 소속된 수십 명의 공무원이 이 씨의 집을 방문했다. 하지만 이들은 관련 법령의 규정들을 이 씨에게 이해시키려고 애쓸 뿐이었다. 이 씨는 실타래처럼 얽힌 규제가 풀리길 기다리는 대신 공장을 옮기는 쪽을 선택했다.
○ 대통령 한마디에 몰려온 ‘공무원 부대’
이때만 해도 금방이라도 규제가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공무원들의 반응은 기대와 달랐다. 현장을 살펴본 뒤 그들은 이곳에 공장을 지으면 안 되는 이유들만 설명하려 했다.
“공장 예정지 바로 앞이 상수원인데 나중에 불이라도 나면 어떡하죠?” “한과 튀길 때 나오는 폐식용유가 상수원에 섞일 수도 있겠네요.” “상수원에서 겨우 20m 거리인데 꼭 여기에 공장을 지어야 하나요?” 이 씨는 “공무원들이 규제를 피해 공장을 세울 방법을 알려주거나 과학적인 방식으로 환경에 미칠 평가를 진행해주길 바랐는데 그러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취사시설이 상수원 주변에 들어서는 만큼 화재위험 등을 꼼꼼히 따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 환경부 “11월중 시행령 등 개정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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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이희숙 씨가 한과공장을 지으려다 복잡하게 얽힌 상수도보호 규제 때문에 포기한 강원 홍천군 와야2리 자택 부근을 가리키고 있다. 홍천=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상수원을 보호하는 규제가 꼭 필요하고 이를 지켜야 한다는 점에 이 씨는 충분히 수긍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찹쌀을 씻어낸 물은 말 그대로 쌀뜨물이고 정화조를 통해 처리할 것이어서 오염의 우려가 없다. 폐식용유는 굳혀서 비누로 재활용할 계획인데 가공과정을 따져보지도 않고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는 것과 똑같이 규제하는 것은 지나치다”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이 씨의 주장에 일부 공감을 표하면서도 확답을 내주지 않았다. 홍천군에서 받은 창업지원금 5000만 원을 투자해야 할 시한에 쫓기던 이 씨는 상수원보호구역 규제에 걸리지 않는 면사무소 옆 건물을 월 20만 원에 임차해 이곳에 한과공장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한과를 생산해 내년 설 명절부터 판매하려면 서둘러 시설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환경부 당국자는 “이 씨 사안과 관련해 11월 안에 처리한다는 목표로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 등 어떤 것을 개정할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다”면서 “불이 나는 긴급 상황에서도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전제를 달거나 예외적으로 오염이 극히 적은 업종을 구분해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공장 설립을 위해 집에서 7km 떨어진 곳까지 분주히 오가고 있는 이 씨는 “규제가 계속되면 와야리처럼 상수원보호구역에 사는 농민들은 농사 말고 다른 수입을 올리기 힘들다”면서 “정부가 하루빨리 규제를 완화해 나처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