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현대상선 미주항로관리팀사원. 사진= 현대상선 제공
-이재준 현대상선 미주항로관리팀사원(1986년생·동국대경찰행정학과 05학번·2014년 입사)
2012년 3월, 난 7급 공무원시험에서 떨어졌다. 필기시험까지는 합격했지만 최종단계에서 미끄러졌다. 왜? 왜 하필 나지? 난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가슴속에서 천불이 났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려주지도 않았고, 알 수도 없었다.
어느 날 여자친구가 말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나랑 도서관에서 공부하자!" 고마웠다. 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공직생활에 대한 꿈을 접기로 했다. 아쉬웠지만 일반기업에 들어가서도 얼마든지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2013년 한해는 참혹했다. 상·하반기 기업공채시험에 50여 군데에 원서를 냈지만, 서류합격은 고작 7곳에 불과했다. 그중 4개 회사에서 면접을 보았다. 여지없이 미역국이었다. 면접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냥 '열심히 하겠다'는 것으로는 어림없었다.
현대상선은 내심 벼르고 벼르던 회사였다. 토익 800점 이상에 인성 적성시험을 1차로 보고, 통과자는 1차 실무진 면접, 2차는 임원면접, 외국어인터뷰, 다대다 찬반토론…. 산 넘어 산이었다. 난 어디서든 해외영업을 하고 싶었다. 넓은 세상에 나가 마음껏 꿈을 펼쳐보고 싶었다. 현대상선에 가면 그 꿈이 꼭 이뤄질 것만 같았다. 1년 전인 2012년 가을에도 현대상선에 지원했다가 보기 좋게 나가떨어졌다. 서류심사에서부터 걸렸다.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정보도 부족하고 자기소개서도 허술했다.
이번엔(2013년 가을) 절실하고 간절했다. 자소서 쓸 때부터 단어 하나, 토씨 하나까지 신경 썼다. 수십 수백 번 읽어보고, 고치고 또 고쳤다. 정말 '이게 마지막'이라는 심정이었다. 그렇다고 딱딱하게 나열식으로 쓰면 맥이 풀려버린다. 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토리텔링으로 풀어갔다. 2011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통역자원봉사활동 일화를 들어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어느 말레이시아 시각장애인이 서울시시각장애인센터를 찾아가고 싶다고 자원봉사자인 나에게 부탁했다. 주최 측에 물어보니 위험하다며 안 된다고 했다. 난 그 말레이시아 시각장애인에게 왜 가려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서울시 장애인 정책을 알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난 다산콜센터에 그곳이 어디 있는지 물어 알아냈다. 그리고 서울시시각장애인센터에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이분을 택시를 태워 보낼 테니 그곳에서 마중 나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흔쾌히 좋다고 했다. 그렇게 그분을 택시로 보내드렸다. 잠시 후 그쪽으로부터 잘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뿌듯했다. 그렇다. 그분이 그냥 돌아갔다면 얼마나 실망이 컸겠는가. 대한민국 이미지도 적잖이 실추됐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자원봉사자이지만 주인의식을 갖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그분을 연결해준 게 얼마나 잘한 것인가. 만약 내가 현대상선에 들어간다면 이와 같이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일을 할 것이다.…'
자소서는 무의미하게 쓰면 안 된다. 건성건성 써도 안 된다. 아름다운 말로 써도 척 보면 다 안다. 나도 처음엔 자소서 하나로 어떻게 한 인간을 판단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단어선택, 문체, 접속사, 문장의 길이, 문장의 리듬, 토씨 하나에서까지 지원자의 심정이 모두 드러나게 돼 있다. 자소서는 그만큼 무섭다.
난 면접에서도 절박했다. 내 눈은 꼭 들어가야겠다는 의지로 활활 불타올랐다. 난 현대상선 홈페이지에 들어가 사보부터 보기 시작했다. 사내동아리활동까지 샅샅이 챙겼다. 그게 면접에서 효과를 봤다. 사보 이야기를 하며 '사내 동아리활동을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상인'이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면접에서 너무 튀면 작위적이다. 하지만 절박하고 솔직하고 진실성이 있다면 좀 튀어도 되지 않을까. 행여 면접관이 '할말 있으면 하라'고 하면 과감하게 그 절박함을 표시하는 게 좋다고 본다. 그런 말이 없다고 해도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겠다'며 최후의 생각까지 쏟아내는 게 좋다.
내 친구 중엔 면접관들의 '좀 약해 보인다'는 지적에 그 자리에서 푸시 업(push up)을 수십 개 하고 합격한 예도 있다. 또 한 친구는 '학과노래'를 우렁차고 씩씩하게 불러서 통과하기도 했다.
면접은 솔직한 게 최고다. 난 그때껏 내 단점을 몰랐다. 내 장점만 내세우려 했다. '당신은 경찰행정학과를 나왔는데 왜 관계도 없는 우리 회사에 지원했나?'라고 물으면, 속으로 '그게 뭐 어때서'라며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단점이 수두룩했다. 난 연결고리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인턴생활도 한 경험이 없었다. 졸업 후 공백기간도 있었다. 상품으로 보자면 난 하자있는 상품이었던 것이다.
난 공무원시험 실패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시 준비해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그리고 속내를 시원하게 모두 털어놓았다. '난 해외영업을 하고 싶다. 현대상선도 기간산업 아닌가. 전시엔 나라에 차출돼 도움이 돼야 한다. 어떤 면에선 공무원 역할 같은 면도 있다.…' 얼토당토않은 소리지만 그렇게라도 억지로 대들며 나의 절박함과 간절한 마음을 표현했다.
면접 때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아침에 어머니께서 주신 우황청심환을 한 알 먹고 갔는데 이게 그만 역효과가 났다. 사장님 면접을 앞두고 혀가 굳어버렸다. 대기 순서가 3번이라 천만다행이었다. 미친 듯이 혓바닥의 침으로 녹여 풀었다. 온몸에서 진땀이 흘렀다.
원어민과의 영어인터뷰는 질문사항이 25개였다. 그중 2 ,3개 문항을 선택해서 나에게 물었다. '조선시대 유명한 인물을 들고, 왜 그를 꼽았는지 설명하라'고 했다. 난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을 뜬금없이 물으니 한순간 당황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왜 그걸 묻느냐'고 반문하며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세종대왕을 꼽았다. 한글창제, 과학발전, 민생 중시 등 업적도 곁들였다. '미드'를 많이 본 게 도움이 됐다.
제2외국어시험은 희망자만 봤다. 난 일본어 중국어를 조금 할 줄 알았지만, 괜히 어설프게 했다간 마이너스가 되리라 생각하고 시도하지 않았다. 동료 중엔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로 인터뷰를 한 친구들이 있었다. 실무를 맡고 있는 현대상선 선배들이 직접 담당했다고 들었다.
다대다 찬반토론은 'SNS는 인간에게 유익할까, 아닐까'가 주제였다. '해운업에 대해 나올 것'이라는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난 반대토론자로 지정됐다. '1분 정도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며 그 시간조차 자꾸만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내 집중력을 테스트 해보는 것 같았다.
이재준 현대상선 미주항로관리팀사원. 사진= 현대상선 제공
난 그동안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공부했다. 정보도 없고, 우물 안 개구리였다. 자꾸 떨어지다 보니 잔뜩 위축되기도 했다. 친구들은 하나둘 회사에 들어가고 나만 이 세상에 혼자 남은 기분. 적막강산. 미칠 것 같이 초조하고 불안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부모님 뵙기도 미안했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되나. 혼자서 몰래 바보같이 울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오기 같은 게 생기기 시작했다. '이게 끝이 아니잖아, 내가 떨어질 애가 아니잖아.' 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난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라고 수없이 중얼거렸다. 내 자신이 초라해 보일 때마다 밖에 나가 20~30분씩 숨이 차도록 달렸다. 그러면 안 좋은 생각들이 사라지고 정신이 박하처럼 맑아졌다.
힘들 땐 먼저 입사한 친구들을 찾아가 술도 얻어 마셨다. '어떻게 준비했는지' 정보도 귀담아 듣고 조언도 구했다. 친구는 친구였다. 내가 못나서 자격지심에 피했을 뿐, 친구들은 나를 도와주고 싶어 했다. 또한 친구들로부터 '건강한 자극'을 받기도 있다.
역시 힘들수록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게 중요하다.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면접 같은 걸 대비하면 효과적이다. 자소서 쓰는데도 토론하다보면 많은 도움이 된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라. 자꾸 떨어질수록 먼저 입사한 친구를 찾아가라.
평소 꾸준하게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건 몰아쳐서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은가. 난 봉사활동에서 인간적으로 정말 많이 배웠다. 2010년 서울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G20정상회의 봉사활동, 2011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봉사활동, 2012년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봉사활동, 서울 은평도서관 사서봉사활동, 대학시절 중국유학생 멘토 봉사활동…. 말이 봉사지 사실은 내가 배운 게 더 많았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준비하고 있으면, 때는 반드시 온다. 나도 취업준비 당시 입사선배들의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말을 도저히 믿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현대상선에서 난 어린애나 마찬가지다. 아는 게 하나도 없다. 미주항로관리팀 27명 중 막내다. 선배들이 정말 위대해 보인다. 대단하다. 난 언제 저렇게 능수능란하게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득하고 까마득하다. 이제 시작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PS:그는 온유하고 겸손했다. 인터뷰 내내 진지하고 솔직했다. 하지만 속은 단단한 체구(174㎝, 70㎏)만큼이나 꽉 차 있었다. 역시나 스포츠광이었다. '프로야구 중계만 안 봤어도 일찌감치 입사에 성공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프로야구가 시작되는 오후 6시 30분만 되면 손이 저절로 스마트폰으로 갔다니 알 만했다.
미칠 정도로 뜨겁고 뜨거운 LG팬. 입사 후 자기소개 때 "LG를 20년 뜨겁게 좋아했다. 그 정도면 남자로서 된 것 아닌가"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럼 LG전자로 갔어야지 왜 여길 왔나'라는 어느 선배의 '농담성 핀잔'까지 들었다니 앞발 두 손 다 들었다. 축구는 차두리 포지션인 오른쪽 윙백, 유도가 3단이다. 어쨌든 체력 하나는 자신 있다고 큰소리다. 농구는 키가 작아 거의 안했다나.
그의 여자친구는 07학번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후배다. 학교친구의 소개로 만나 2012년 초부터 사귀었다. 그가 현대상선에 입사한 후 곧바로 여자친구도 취업에 성공했다. 그 이후는 보나마나 해피엔딩. 내년 결혼 예정이다.
이재준 현대상선 미주항로관리팀사원. 사진=이재준 씨 제공
"세계로 뻗어가는 진취적이고 자율적 인재를 원한다"
-박재원 인재경영팀장이 말하는 현대상선 인사기준
-현대상선 입사시험 과정은?
1차 서류전형 / 2차 인·적성시험 / 3차 실무면접 및 외국어면접 / 4차 임원면접입니다.
-스펙은 얼마나 보나요?
학점 3.2 이상, 영어 토익 Speaking 150 / Writing 150 수준입니다.
-이재준 씨는 뭐가 맘에 들어 뽑았나요?
이재준 씨의 경우 현대상선이 추구하는 인재상 중 '자율적 조직인'에 가깝다고 판단했습니다. 자기소개서 등 서류상의 자료와 심층면접을 통해 두루두루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기본에 충실하며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충분한 자질을 가진 인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울러,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힘으로 쌓은 개인경험을 높이 샀습니다. 글로벌 마인드와 탁월한 성실성을 바탕으로 획득한 유창한 외국어실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전문인으로서 글로벌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인재라고 확신했습니다.
-해양 관련 대학이나 관련학과 출신들에게 가산점이 있나요?
현대상선의 채용 시 해양 관련 대학이나 학과뿐만 아니라 특정전공에 따른 가산점 부여는 전혀 없습니다.
-제2외국어 구사자에게 가산점을 얼마나 주는지요?
제2외국어의 경우, 본인이 구사 가능하다고 지원서에 기재한 경우에 한하여 제2외국어 인터뷰를 실시합니다. 적용방식은 전체 점수가 동점인 경우 우선 대상자로 선정하는 방식입니다.
-자소서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포인트는?
자소서 문항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본인의 생각보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의 성실성입니다.
-한마디로 현대상선에 들어오려면 어떤 사람이어야 하나요?
우선 글로벌 비즈니스를 위한 포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양성 있는 마인드와 전문성을 갖출 수 있는 자세를 가진 사람을 선호합니다. 예를 들어 지원자가 현재 외국어능력이 빼어나다면 해외비즈니스를 위해 채용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해외연수 경험이 없고, 외국어가 중간정도의 실력자일지라도 향후 발전할 수 있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더욱 환영합니다. 해외연수로 외국어능력만 있는 지원자보다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경험, 사회를 바라보는 사고의 다양성과 태도를 우선시하는 것입니다.
-인문계와 이공계 채용비율은?
글로벌 비즈니스가 위주인 업종 관계상 인문계 지원자가 많습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현재 인력구성이 인문계 위주로 되어 있습니다. 언뜻 이공계통의 채용이 제한되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렇다고 인문계-이공계 비율을 정하여 채용하지는 않습니다.
-SKY와 지방대, 서울에 있는 대학과 수도권대학 등 차별이 있나요?
현대그룹의 경우 전통적으로 다른 어떤 회사들보다 채용 시뿐만 아니라 입사 후에도 학벌에 대한 차별은 없는 회사라고 자부합니다.
-올 채용에서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최근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역사지식 등이 중요한 트렌드가 되고 있습니다. 향후 저희는 채용방식의 변화보다는 면접의 비중을 지금보다 높게 고려하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통상보다 면접시간을 2배 이상 늘려서 집중면접방식으로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면접비중을 더욱 강화해서 지원자의 인문학 소양이나 역사지식 등을 충분히 살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