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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복 46도 열기보다… 해줄 것이 없다는 게 더 고통”

입력 | 2014-10-11 03:00:00

[글로벌기획]아프리카 에볼라와 사투 ‘국경 없는 의사회’




에볼라와 싸우는 ‘국경 없는 의사회’ 의료진은 얼굴을 가리는 후드와 고글, 마스크를 착용해 외계인처럼 보인다. 방역복 내부 온도는 46도까지 치솟기도 한다. 우주복 같은 차림 때문에 환자들에게 미소를 지어줄 수도 없는 그들은 편견 및 불신과도 싸워야 한다. 국경 없는 의사회 제공

“닥터 라고티에르, 택시가 도착했습니다.”

지난달 28일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광장 인근에 있는 ‘국경 없는 의사회(MSF·M´edecins Sans Fronti`eres)’ 본부. 안내방송이 오후의 정적을 깼다. 로비 한구석에 앉아 있던 라고티에르 박사(50)가 커다란 트렁크 2개를 들고 일어섰다. 그는 기자에게 “오늘 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도 방기에 도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곳은 내전 중이라고 들었는데 위험하지 않기만 바랄 뿐”이라며 무덤덤하게 덧붙였다.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그는 10년 전부터 MSF 소속으로 활동해왔다. 1년에 한두 차례씩 휴가를 활용해 콩고민주공화국 아프가니스탄 기니 등 분쟁지역에 4∼6주간 환자를 돌보고 돌아왔다. 분쟁지역에 파견된 MSF의 외과의사는 현지 병원이나 임시 진료소에서 24시간 대기하면서 하루에도 20건씩 수술을 한다. 그는 “원래 여행과 도전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간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1971년 나이지리아 내전을 계기로 프랑스의 의사, 기자들이 모여 처음 설립했다. 199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 단체의 주축은 의료 시스템이 무너진 가장 위험한 지역에서 최후까지 남아서 환자의 생명을 돌보는 의료진이다. 이들은 전 세계 68개국에서 400개가 넘는 프로젝트에 투입돼 있다. 구호요원으로 활동하는 의료진은 3만2000명에 이른다.

최근 MSF의 활동은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확산되는 치명적인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이다. 이 단체는 올해 3월부터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등에 들어가 치료센터 5곳을 열고 병상 480개를 설치했다. 현지에 파견된 2000여 명의 구호요원들은 목숨을 걸고 에볼라 감염자를 돌보고 있다.



섭씨 46도의 방역복 입고 사투

라이베리아에 있는 에볼라 치료센터에서 '국경 없는 의사회'소속 의료진들이 방역복으로 중무장한 채 주민들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국경없는 의사회 제공

“병원은 이미 환자들로 꽉 차 새로 들어오는 환자들은 복도에 눕힐 수밖에 없었어요. 센터 곳곳에는 사람들의 신음과 비명으로 가득 차 있었죠. 환자들의 피와 토사물 냄새는 끔찍했죠. 치료센터 곳곳에 스며든 시신 냄새로 숨쉬기도 어려워요.”

미국 출신 수질환경·보건위생 전문가인 캐서린 데디외 씨(43·여)는 최근 5주간 라이베리아 에볼라 치료센터에서 겪은 경험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유행할 당시 중국과 홍콩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는 같은 단체에서 함께 일해 온 동료와 결혼해 현재 파리에서 살고 있다.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에 있는 에볼라 치료센터는 축구장 4배 정도의 크기. 올해 3월에 120병상으로 개원했고 현재 800개 병상으로 늘리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데디외 씨는 동료 의료진의 감염을 통제하기 위한 책임자로 일했다. 그는 “에볼라는 환자의 체액과 직접 접촉하면 감염되기 때문에 의료진은 1인치의 피부도 노출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라이베리아의 고온다습한 날씨에 완전 방수 소재의 방역복 안의 온도는 섭씨 46도까지 치솟는다. 또 안경을 쓴 사람은 90%에 이르는 습도 때문에 반드시 서림방지용 스프레이를 뿌려야 한다.

데디외 씨는 “방역복을 입고 처음 15분은 그냥 덥기만 했는데 나중엔 지독한 두통까지 밀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센터에 가는 사람은 꼭 양말을 충분히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온몸에서 흘러내린 땀으로 젖은 양말을 제때 갈아 신지 않으면 발에 물집이 잡혀 퉁퉁 붓는다는 것이다.

서아프리카로 가는 MSF 직원들은 모두 벨기에 브뤼셀 본부에서 1박 2일간 특별훈련을 받고 있다. 지원자들은 염소 소독 방법부터 시신을 안전하게 묻는 법까지 이론 교육을 마친 뒤 가상의 긴급 치료센터에서 실제 상황과 똑같은 훈련을 받는다.

에볼라 치료센터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장갑, 고글, 마스크, 모자, 앞치마, 부츠 등 8단계로 겹쳐 입은 방역복을 벗는 순간이다. 특히 노란색 전신 방역복에는 감염된 혈액이 묻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손을 대지 않고 옷을 벗어야 한다. 초보자는 얼굴에 땀을 흠뻑 쏟아내면서 손을 쓰지 않고 방역복을 벗느라 30분 넘게 발버둥을 치기도 한다. 하루에도 4, 5번씩 이 과정을 반복한다. 데디외 씨는 방역복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마치 머리 위로 한 통의 물을 퍼붓는 듯한 시원한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이 방역복은 한 세트에 약 70유로(약 9만3800원). MSF가 최근 주문한 방역복은 2만5000벌. 이는 라이베리아 에볼라 치료센터에서 두 달간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에볼라 치료를 위해 파견되는 MSF 국제의료팀은 4∼6주 활동 뒤 교대한다. 건강과 감염을 우려해서다. 의료진은 항상 ‘2인 1조’로 움직이며 환자를 대할 때 동료가 실수하지 않는지 서로 감시하고 체크한다.

지금 의료진은 에볼라 치료제가 없어 환자를 돌보는 데 한계에 부닥친다. 고글과 마스크까지 쓰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역복을 뒤집어썼지만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 이들을 좌절에 빠지게 한다. 우주복 차림의 의사들은 미소를 짓거나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환자를 위로해줄 수 없다. 심지어 환자의 심장 고동 소리와 폐 호흡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시에라리온에 파견됐던 미국 출신 의사인 더글러스 라이언 씨(52)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들에게 다가가 만져주는 일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발병 뒤 며칠 동안 아무도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이 없어 극도의 공포감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올해 3월 에볼라 확산 이후 최소 300명의 의료진이 에볼라에 감염돼 그중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MSF 스태프 중에서도 14명이 감염됐고 그중 8명이 목숨을 잃었다. 감염자는 대부분 현지 채용 인력이었으며 국제 스태프 중에는 지난달에 처음으로 프랑스의 여성 간호사가 감염돼 본국으로 송환됐다. MSF 자체 조사에 따르면 의료진은 대부분 치료센터가 아닌 숙소 인근 마을에서 에볼라에 감염됐다.

‘정치적 중립성’은 안전의 보루

MSF에 지원해도 뽑히기는 무척 까다롭다. 의사는 자격 취득 뒤 2년 이상의 경력이 필수다. 영어에 능통해야 하며 파견 지역에 따라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의 외국어도 구사해야 한다. 전체 직원의 44%는 물류지원, 행정, 식수 및 위생 관리요원과 같은 지원 분야에서 뽑는다.

MSF 프랑스 지부는 스태프의 한 달 월급이 1013∼1446유로(약 135만∼193만 원) 선이다. 월급은 전문성과 경력, 출신 국가별로 약간씩 다르다. 파견지까지의 왕복 항공료, 현지 숙식비, 건강보험, 사전교육비, 예방접종비 등은 별도로 제공된다. 1년에 25일은 유급휴가를 받기도 한다. 현재 MSF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은 26명이다.

이 조직에서는 신속성이 생명이다. 파리 본부에는 20명의 ‘긴급대응팀’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 이들은 48시간 이내에 지구상 어느 곳이든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이들은 내과의사, 간호사, 외과의사, 마취과의사, 약사, 물류전문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리비아에서 내전사태가 발생했을 때 MSF는 사흘 만에 3명으로 구성된 선발대를 보냈다. 모든 도로가 통제돼 이들은 보트를 타고 리비아의 미수라타 해안에 도착했다. 이후 2, 3일 만에 브뤼셀 본부에서 19명의 국제 스태프로 구성된 긴급대응팀도 보트를 이용해 도착해 병원을 열었다. 긴급대응팀은 두 달간 1200명이 넘는 여성과 어린이를 치료하고 525명의 부상자를 수술한 뒤 현지 정부에 병원시설을 넘기고 철수했다.

MSF 활동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는 ‘정치적 중립성’이다. MSF는 활동 예산의 80%가량을 민간 기부를 통해 조달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와 인종, 종교를 초월해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1982∼94년 MSF 회장을 맡았던 로니 브로망 씨(64)는 “우리 단체는 반군이든, 난민이든, 탈레반이든 간에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않고 분쟁 현장에서 모든 환자들을 치료해준다”며 “이러한 ‘정치적 중립성’은 어디서든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도처에서 위험이 도사린다. 소말리아에서는 현장 활동가들이 2008년에 3명, 2011년에 2명이 잇따라 숨지면서 모든 의료진이 철수했다. 2004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현장 활동가 5명이 숨져 5년간 진행해왔던 프로그램이 중단됐다. 2011년 10월에 케냐의 난민캠프에서는 현장 활동가 2명이 납치돼 1년 반이 넘도록 인질로 잡혀 있다가 풀려났다.



삶과 죽음의 치열한 현장으로 가는 이유

대부분의 국가에서 최고의 안정된 삶을 보장받는 의사들이 왜 이렇듯 힘들고 어려운 일에 자원하는 것일까. 브라우만 씨는 “절망에 빠진 이들을 구하면서 인도주의 윤리를 실천하는 행복감과 새로운 문화에 접하는 지적 흥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라고티에르 씨는 “프랑스에서는 내 전문인 복부수술밖에 할 수 없는데 분쟁지역에서는 모든 외과수술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는 큰 도전 기회”라고 말했다.

이 단체에서는 의사뿐만 아니라 영양학자, 공중보건 전문가, 행정·물류전문가들도 긴급 구호 업무에서 귀중한 경력을 쌓는 기회를 얻는다. 영국 출신의 보건위생 전문가인 코키 밴더벨드 씨(55·여)는 에볼라센터 파견을 제안받았을 때 솔직히 자신도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그는 라이베리아에 도착한 뒤로 때때로 ‘약간의 열’이 느껴져 한밤중에 일어나 체온을 재보기도 했다. 목이 약간이라도 아프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는 에볼라 치료센터에서 숨진 환자의 시신을 비닐백에 담아 옮기는 일을 도왔다. 그는 수많은 시신을 옮기면서 ‘언젠가는 내 순서가 돌아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죽음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됐던 그는 유언장까지 미리 작성해두었다. 그에겐 자녀와 손자가 있다. 그는 “물론 나는 언제까지나 그들 삶의 일부이길 원한다”며 “지난 12년 동안 내 인생을 바쳐왔던 이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데디외 씨는 “MSF에서 활동하면서 내가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다”며 “사람에 대해 더욱 깊이 배우고 내가 잊고 지내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