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최근까지 북한 선교를 위한 기도회 행사에 참석하는 등 외부 활동을 했으나 9일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진 뒤 9시간여 만에 운명했다. ‘닳아 없어질지언정 녹슬지 않는다’는 좌우명에 어울리게 평생을 교회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목회자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에는 102세의 나이로 부활절 연합예배 설교자로 나섰다.
1911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목사(방효원) 아들로 태어나 선천 신성중학교와 평양 숭실대, 평양장로회신학교를 마쳤다. 평양 장대현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면서 길선주 목사와 활동하기도 했다. 1937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중국 산둥(山東) 성 일대에서 21년간 선교사로 일했다. 중국 당국은 1957년 그를 북한으로 추방하려고 했으나 중국에 남은 마지막 개신교 선교사라고 서방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와 이영훈 담임 목사, 강변교회 김명혁, 덕수교회 손인웅, 도림교회 유의웅, 명성교회 김삼환, 영락교회 이철신 목사 등이 이날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았다. 유족으로 재미 역사학자인 아들 선주 씨와 딸 선자 씨가 있다. 장례는 한국기독교회장으로 치러지며 장례 예배는 14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빈소 02-2227-7556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