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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서 걸려온 전화 “中情 숙정작업을 맡아주시오”

입력 | 2014-10-11 03:00:00

[憧憬 이종찬 회고록]〈8〉 10·26과 중앙정보부




1980년 4월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는 중정 간부들. 오른쪽부터 허문도 비서실장, 이종찬 총무국장, 김만기 감찰실장, 김성진 기획조정실장, 김영선 2차장, 서정화 1차장이다. 이종찬 씨 제공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 시해사건’이 있은 후 중정의 국내 파트는 형편없이 위축되었다. 해외파트 부국장으로 있던 나는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항상 생각하고 주장해 온 바는 “이제 정보부는 사바크(SAVAK)가 되지 말고 모사드(MOSSAD)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바크는 이란의 팔레비 국왕이 왕권을 보위하기 위해 창설한 정보기관. 정치적 반대파를 무참하게 고문하고 감시하고 살해한, 악명 높은 기관이다. 반면 모사드는 이스라엘 민족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하여 싸우는 기관이다.

나는 이런 뜻을 정리하여 10·26 이후 부장서리로 부임한 이희성 장군에게 드렸다. 하지만 며칠 안 되어 12·12 사건이 터졌다. 정승화 참모총장이 체포되면서 이희성 장군은 후임 참모총장과 계엄사령관을 겸직하게 되어 부를 떠났다.

그 바람에 윤일균 차장이 부장서리가 되었다. 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윤 차장은 몇 차례 정실인사로 부에 심대한 타격을 준 장본인이었다.

1980년 2월 9일 국군보안사령부의 정보처장 권정달 대령이 시내 서린호텔에서 저녁을 하자고 했다. 나갔더니 신군부 실세인 보안사 비서실장 허화평, 행정처장 허삼수, 수사처장 이학봉이 모두 모여 있었다.

“오늘의 의제는 정보부의 개혁입니다.” 권 처장이 말문을 열었고, 허화평 대령이 상당히 정리된 시각으로 정보부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권 처장이 나에게 정보부 개편방안을 하나 작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희미하게나마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보부장을 맡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와중에 윤일균 부장서리는 또다시 정실인사를 꾸미고 있었다.

정보업무에 있어서 암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일본이 2차대전 때 태평양에서 승세를 잡고도 결국 무릎을 꿇은 원인은 암호전에서 완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필칭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의 암호체계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날, 과학정보국의 박안기 부국장이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우리 부의 암호체계는 2차대전 때 에니그마(Enigma) 암호수준에 지나지 않는, 지극히 초보적이고 보안성이 없는 체계입니다. 아마 북에서 하나도 빠짐없이 도청하고 있을 겁니다.”

박안기 부국장은 육사 12기생으로 재학시절 수학영재 소리를 들었다. 그는 미국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당시는 PC가 없었던 시대였지만, 그는 직접 조립한 컴퓨터로 모든 사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마치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을 보는 듯했다. 튜링은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이 만든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해 전쟁 승리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박 부국장도 튜링이 한 것처럼 암호를 컴퓨터에 바로 연결해 내게 설명해줬다. 나는 즉각 통신보안과 K 과장에게 암호가 불안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실제 암호를 가지고 시험해 보자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박 부국장은 불과 2시간 만에 암호문을 거뜬히 풀어냈다.

그랬더니 K 과장이 당황하였다. 그는 나에게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말고 다시 한번 시험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그는 얄팍한 꾀를 부렸다. 문장 자체가 안 되는 메시지를 암호화하여 풀어보라고 내놓은 것이다. 박 부국장이 끙끙대며 풀어본 결과 암호가 아니라 한글을 불특정하게 나열한 것이었다.

“K 과장, 내가 당신네 하는 사업을 고의로 트집 잡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이 암호기기가 보안성이 없으니 우리 다 같이 새로 발전시키자는 것인데 왜 그렇게 악의로 받아들이시오?”

며칠 후 윤 부장서리가 나를 불렀다. “왜 암호체계가 부실하다고 간섭하는 건가?” 은근히 나를 협박하는 것이 아닌가. 틀림없이 암호기기 제작회사와 무엇인가 뒷거래가 있고, 이를 은폐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시점에 해외 출장을 가게 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내가 없는 사이 윤 부장서리는 인사안을 만들어놓고 최규하 대통령의 결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추측한 대로 박안기 부국장의 직위를 해임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실로 갔다. 결코 박안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암호체계의 취약점과 위험성을 지적하였는데 그를 자른다면 누가 과연 애국하려 하겠는가? 그런 충정에서 약간 격분하여 말했다.

전두환 장군은 즉각 부에 파견되어 있던 최예섭 장군을 전화로 찾았다.

“정보부 윤 차장에게 전하시오. 지금 임시로 부장서리 체제인데 인사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을 강조하여 전달하시오.” 박안기 부국장 거세 움직임이 쑥 들어갔다.

4월 10일 드디어 권정달 처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전두환 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직할 것이며, 정보부의 대대적인 ‘숙정’을 위해 나를 총무국장으로 임명할 것이라는 통보였다. 국방대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던 김용갑도 차출해 감찰실 부실장으로 기용할 것이라고 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 한미정상 만찬장 정전에 5분간 암흑… 존슨엔 인간방호벽, 박정희는 나홀로 ▼

10·26 그날 모습을 예고하는 한 장면


이종찬이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초대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부임한 지 며칠 안 되었을 때다.

자료관리국장이 10·26 사건의 현장사진을 모아놓은 파일을 가지고 왔다. 이종찬 부장이 가지고 오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사진에는 끔찍했던 궁정동 안가의 현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주위에는 선혈이 낭자했고….

이종찬의 시선이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옮겨갔다. 차지철은 삼단문갑을 잡고 피하려다가 김재규의 총에 맞아 문갑을 잡은 채 그대로 넘어져 있었다. 다음 사진은 발가벗긴 채 누워있는 차지철의 시체였다. “마치 야생동물을 잡아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종찬은 진저리를 쳤다.

그 순간, 이종찬의 입에서는 부지불식간에 욕이 튀어나왔다.

“경호실장이란 놈이 총도 안 차고, 딴짓하느라 날뛰더니 제 몸조차 지키지 못했군. 한심한 자식!”

1966년 10월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국빈 방문차 한국에 왔다. 이종찬이 육사교육장교를 그만두고 중앙정보부로 옮긴 이듬해의 일이다.

서울 워커힐 호텔의 더글러스 홀에서 환영만찬을 준비했는데 너무나 많은 방송 촬영장비가 동원되는 바람에 전기 과부하로 그만 퓨즈가 나가고 말았다. 순간 더글러스 홀은 칠흑같이 깜깜해졌다. 그런데 홀 안에서는 ‘한국말’만 들렸다. 박종규 경호실장과 경호관들이 지르는 고함소리였다. 미국 경호관들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5분쯤 흘렀을까. 불이 다시 들어왔을 때 홀 한가운데 박정희 대통령만 혼자 서있었다. 키가 6척이나 되는 존슨 대통령은 온데간데없었다. 자세히 보니 키가 큰 미국 경호관들이 존슨 대통령을 구석에 몰아넣고 인간방호벽을 쌓고 있었다. 우리 경호관들은 그때도 대통령을 그대로 방치한 채 소리만 지르고 있었고….

이종찬의 회고. “박정희 대통령은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킬 경호실장을 이상하게도 두 번씩이나 잘못 기용했다. 첫 번째 경호실장 박종규는 육군본부 정보국 상사 시절부터 박정희를 모셨다. 그때에도 성격이 개차반이어서 이름이 났다. 그러나 이런 망나니 성격을 박정희는 좋아했다. 술자리도 잘 마련하고 유흥의 뒷바라지도 잘했다. 그런 식의 ‘경호’를 했기 때문에 1975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육영수 여사를 돌아가시게 했다. 차지철은 더했다. 그는 육군사관학교에 낙방한 열등감 때문에 경호실장이 된 뒤 ‘부통령’ 행세를 했다. 그러니 대통령이 참석하는 술자리에 권총도 차지 않고 동석한 것이다. 경호할 생각은 않고 대통령이 말할 때 참견하고 건방떨다가 김재규의 총을 맞고 자기만 살려고 화장실로 도망을 갔다. 그러고도 살려고 화장실에서 나와 문갑을 방패삼아 몸을 숨기면서 김재규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다가 총에 맞고 쓰러졌다. 김재규의 표현대로 ‘버러지 같은 놈’이다. 두 사람의 자격 없는 경호실장에 홀린 박정희 대통령, 이것이 그의 18년 통치를 결산하는 알파요 오메가다.”

김창혁 전문기자 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