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노벨생리의학상 후보로 거론된 찰스 리 박사
찰스 리 예일대 의대 교수이자 서울대 석좌초빙교수를 미국 코네티컷 파밍턴에 새로 문을 연 잭슨연구소에서 만났다. 그는 “수상 후보로 거론된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노벨상은 목표가 아니다. 나의 목표는 유전자 분석을 통한 인간질병 극복”이라고 했다. 파밍턴=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허문명 기자
행사는 다름 아닌 코네티컷 의대와 병원 안 복합단지에 설립된 잭슨연구소 산하 유전의학연구소 개소식. 오후 2시 준공식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500여 명. 몇몇의 아시아계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백인들이었다. 코네티컷 주지사, 상원의원, 코네티컷 대학총장을 포함해 미 인간유전자연구소장 등 관련 정부 관계자들도 있었다.
이날 개소식을 축하하기 위해 연단에 나온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미국 인간유전자 연구의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미 NBC 방송은 행사가 끝나자마자 개소식을 속보로 전하며 ‘유전체 연구 동향’ 특집 좌담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미 미국 내 2곳의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애디슨 리우 총괄소장은 “오늘 문을 여는 파밍턴 연구단지는 동물 연구가 아닌 인간 질병, 즉 암 등 불치병과 난치병 연구에 집중한다”며 “DNA 연구 분야 세계 최고 연구자인 찰스 리 박사가 연구센터 책임자”라고 발표했다. 이어 “오늘은 연구소 건물 문을 여는 것을 축하하는 날이 아니라 인류가 질병을 극복하는 미래로 가는 문을 여는 것을 축하하는 날”이라고 했다.
7일 문을 연 잭슨연구소 파밍턴 연구단지.
리 박사의 안내로 그의 사무실로 들어서며 기자는 다소 놀랐다. 앞으로 연구원 300여 명, 직원 1700여 명과 함께 연구소 내 모든 업무를 총괄하게 될 그의 사무실엔 작은 책상과 모니터 2대, 6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테이블 한 개가 전부였다. 소박하다 못해 단출했다. 잭슨연구소 측은 그에게 10년 동안 소장 직을 보장하고 정부 지원 포함 10년간 1조 원이라는 파격적인 예산 지원을 약속했다.
“잭슨연구소는 전 세계에 실험용 쥐를 공급하는 비영리기관이다. 환자의 암세포를 쥐에 이식해 약물 실험을 하는 ‘아바타 마우스’ 기술도 개발해 1994년부터 전 세계 연구소에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쥐 연구를 인간 연구와 직접 접목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내게 협업의사를 타진해왔다. 동물모델 연구에서 인간모델로 가는 계기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었다. 당시 나는 하버드대 의대 교수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해온 유전자 연구를 인간질병에 구체적으로 적용시키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하버드대를 버리는 결정은 쉽지 않았지만 연구소 측이 예일대 의대 교수직과 연구를 위한 쥐의 무제한 공급,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들여 만든 새 연구소까지 함께 맡아달라고 했을 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리 박사는 유전자 연구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꾼 공로를 인정받는 이 분야 세계적 스타 학자이다. 2001년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고 인간의 유전자 염기 서열이 해독되었을 때에만 해도 인간 유전자는 인종 불문 99.9%가 거의 같을 것이라는 게 통념이었다. 하지만 리 박사는 이 가설을 뒤집고 단지 서열의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염기구조 덩어리가 없거나 중복되어 있어 사람마다 차이가 크며 이것이 암 발생 등 질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2004년 발표했다. 이러한 구조적 변이를 그는 ‘단위반복변이(Copy number variation)’라고 이름 붙인 연구 논문을 세계적 유전자 학술지인 네이처제네틱스저널에 발표해 세계 생명과학계를 놀라게 했다. 얼마 전 ‘노벨상 족집게’로 알려진 톰슨 로이터가 한국계로서는 최초로 노벨 생리의학상 분야 수상이 유력한 한 명이라고 리 박사를 지목해 국내외 언론에서 주목을 받았다.
“(노벨상) 기대를 많이 했는데 아쉽다”고 하자 갑자기 그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정말 죄송하다”고 말하며 머쓱하게 웃었다.
“발표 전날 한국에서 여러 분들이 전화를 해와 기대가 굉장히 크구나 생각했다. 나로서는 거론된 것만으로도 영광이지만 지금으로선 사실 노벨상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암 극복 등 연구가 더 중요하다. 상은 연구를 열심히 하면 결과로서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유전자에 ‘단위반복변이’라는 구조적 변화가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그전까지만 해도 사람들 간에는 단순한 유전자 서열의 차이, 혹은 약간의 오탈자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험을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아예 덩어리째 빠지거나 중복되는 현상이 나온 거다. 집을 예로 들면 그전까지만 해도 집의 유형은 거의 비슷하고 내부 가재도구 배열이나 방의 위치 이런 것만 분석하면 집들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집 한 채가 더 있다거나 집 자체가 없거나 하는 구조적 차이가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후 많은 연구자들은 그의 발견을 바탕으로 ‘유전자의 구조적 변이’가 사람들 간의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유전병 암 자폐 등 질병을 만들어내는 핵심 원인이라는 결과들을 속속 내놓기 시작했다. 리 박사는 지난 10년 동안 자신의 연구 결과를 보충하고 인간 질병 극복 관련 연구를 담은 140여 편의 논문을 네이처 셀 사이언스 등에 발표했다. 2007년 12월에는 ‘올해의 가장 큰 발견’이란 제목으로 사이언스 표지 인물에 오르기도 했다. 리 박사는 미국 한림원 회원이기도 하다.
―처음 (구조 변이를) 발견했을 때 느낌이 어땠나.
“약간의 희열은 있었지만 대단한 것을 발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막상 논문을 쓰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며 믿어주지 않아 애를 먹었다. ‘정 그렇게 못 믿겠으면 게재를 철회하고 다른 곳에 싣겠다’고 하자 겨우 실어주더라(웃음).”
―과학자들 말을 들어보면 통념과 다른 실험 결과가 나오면 실험을 잘못했나 생각하고 넘어간다고 들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나.
“글세…. 무엇보다 실험 결과에 겸손하고 진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학자로서 경계해야 할 것은 ‘추정’이나 자기 나름대로 세워놓은 가설에 묶이면 안 된다는 점이다.”
얼핏 보면 당연한 말 같지만 그와 연구를 함께했던 사람들은 연구에 대한 그의 성실성과 열린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리 교수의 지도하에 하버드대 의대에서 공부한 박한수 박사는 “새벽 서너 시에 퇴근하려고 나오다가 어두운 연구실 복도에서 선생님과 마주쳐 서로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많았다”며 “하버드 의대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선생님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몰두했고 항상 새로운 결과에 호기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리 박사는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두 살 때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앨버타대에서 의과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영국 케임브리지와 하버드 의대에서 공부했다.
―왜 의대를 택했나.
“실험실 연구자로 일했던 아버지가 의사가 되기를 원했다. 막상 의대 공부를 시작해보니 외울 것이 많아 너무 힘들었다. 학점도 안 나와 그만두려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유전학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다. 그 뒤부터는 학교에 가는 게 신이 났다.”
―인종차별을 겪지는 않았나.
“초등학교 때만 해도 머리카락이 검은 학생은 나 혼자였다. 백인 애들한테 많이 맞은 적도 있기는 하다.”
겉으로는 탄탄대로를 걸어온 듯 보여도 사실 그의 삶은 그의 말대로 “쉽지 않은 여정”이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많았다. 연구원 시절엔 결혼반지 마련할 돈이 없어 미래의 아내에게 “급히 쓸 곳이 있다”며 200달러를 빌린 뒤 그 돈으로 반지를 사서 결혼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다시 연구 이야기로 돌아갔다.
▼“한국 병원들과 협업 기대… 서울에 잭슨硏 아시아 지부 설립 희망”▼
―유전자의 구조적 차이를 발견한 뒤 인간질병 연구로 연구를 발전시키고 있는데….
“특정 암을 가진 사람들의 유전자 분석을 해보면 염기서열의 덩어리 차이, 즉 구조적 공통점이 파악된다. 이런 데이터들을 축적하면 유전자 분석만으로도 질병 예측과 치료 약물을 예측할 수 있다.”
그는 이 대목에서 잭슨연구소의 ‘아바타 마우스’가 왜 중요한지 설명했다.
“위암 환자의 암 덩어리를 50∼100여 마리 쥐에게 이식해 ‘위암쥐’를 만들어낸다. 그 뒤 모두에게 각자 다른 약을 시도해본다. 그러면 효과가 있는 약이 나타나 이걸 사람에게 적용하는 식이다. 얼마 전에 신장암 쥐를 만들어 약을 투약해 본 결과 놀랍게도 유방암 약이 효과가 있었다. 이 약을 실제 환자에게 투약했더니 역시 좋은 결과가 나왔다.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유전자분석 치료 효과는 기존 방식에 비해 월등히 높다.”
그는 2012년 서울대 의대 석좌교수로도 임명되어 서울대 의대와 공동으로 위암 유방암 등 암유전자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일찍 고국을 떠났는데 한국에 대한 애정이 특별하다.
“어머니께서 저녁에는 항상 된장찌개 김치찌개를 해줬다. 1986년 교환학생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았는데 너무 마음이 편했다. 한국은 나를 한국인으로 받아줬다. 제1회 일천의학상(2007년·한국 실험의학의 선구자 가천 이기영 교수의 뜻을 기리는 상)도 주었고 호암상(2008년)도 주었다. 한국 국적을 얻고 싶다. 이중국적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만약 노벨상을 받는다면 한국 국적으로 받고 싶다.”
잭슨연구소 측에서는 그가 한국 대학의 석좌교수를 한다고 했을 때 마뜩지 않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휴가를 반납하고 연봉이 깎이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한국 출장과 공동연구를 밀어붙였다.
―한국 과학계를 실제 경험해보니 어떻든가.
“교수나 학생들의 열정에 놀랐다. 미국 학생들은 오후 5시에 수업만 끝나면 다 가버린다. 한국 학생들의 도전정신과 열정이 대단하다. 다만 국제적인 공동연구가 좀 약하다. 연구를 혼자 하는 시대는 지났다. 최근 노벨상에서 많은 공동연구 수상자들이 쏟아지는 이유이다. 글로벌 무대에 나가 네트워크를 만들고 공동연구하며 토론도 하는 일들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그는 이어 “아시아 중에서 한국이 가장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어 있는 나라”라고 했다.
“일본은 아직도 국제학회를 일본어로 할 정도다. 중국은 ‘아바타 마우스’ 연구를 독자적으로 시작했지만 수준이 떨어진다. 미국과 문화도 다르고 신뢰 구축이 어렵다. 한국은 또 건강검진분야에서 독보적이다. 미국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광범위한 검진 자료가 많이 확보되어 있다. 암 치료가 4, 5개 대형병원에 집중되고 있는 것도 자료 축적 면에서는 긍정적 면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 연구소와 한국 병원들의 협업을 기대한다. 실제로 내년 상반기에 서울에 잭슨연구소 아시아 지부를 만들고 싶고 이를 통해 한국과 공동연구하고 아시아의 허브 역할을 하고 싶다.”
그의 입에서 ‘잭슨 코리아’라는 말이 나왔을 때 이것이야말로 창조경제의 물줄기를 잡을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노벨상’으로 시작된 인터뷰는 인간질병 극복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 한국과의 공동연구 쪽으로 확장됐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와 함께 일하는 한국 연구원들로부터 한국 과학계 및 정부와의 논의가 ‘정서적’으로 쉽지 않다는 말들이 다가왔다. 찰스 리 박사의 눈은 한국을 향해 열려 있었지만 우리는 정작 얼마나 열린 마음을 갖고 그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파밍턴에서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